2020년엔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이란 중요한 선거가 있다. 한국의 4월 총선은 이미 시작돼 매일같이 정치 뉴스가 쏟아지고 있고, 미국 대선도 양당의 경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선거일수록 투·개표 과정이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 민주당이 당내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과정에 사용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의 오류로 최종 발표가 사흘이나 지연되면서 시스템이 의심받기 시작하자 후보자들이 재집계를 요구하는 등 혼란이 있었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후보자 간에 투표 결과를 집계하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민주통합당 6월 전당대회에서 일부 유권자가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를 하면서 중복투표 의혹이 제기돼 혼란이 야기된 적이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를 모두 했는데, 그것이 시스템상에서 걸러지지 않고 통과된 게 드러나면서 투표 시스템의 신뢰성 문제가 부각된 사건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선거에서 투·개표 시스템의 투명성과 신뢰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 종이에 기표하고, 손으로 개표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가구의 인터넷 접속률이 100%에 육박하고, 국민의 85%가 스마트폰을 보유한 인터넷 강국인 한국이 여전히 종이 투표용지에 의존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후보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게 될 4월 총선은 투표용지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전자식으로 투표용지를 읽어 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아날로그 방식 투·개표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공학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의 소견일 수는 있으나 이런 불신의 문제들은 얼마든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불신의 문제가 단지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측면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이란 기술은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를 만드는 기술로 이해하고 있는데, 신뢰성이라는 가장 예민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인 블록체인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신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용될 수 있다. 투·개표 시스템은 물론 투표장을 오가는 불편함까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다. 투·개표 시스템의 신뢰 문제가 해결돼 전 국민이 모바일폰 혹은 전자식으로 국회의원 선거를 할 수 있다면 종이 투표를 하기 위한 엄청난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도 가능할 것이란 정치학자의 주장도 나온다. 그야말로 ‘국민 주권 4.0’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정치권이 전자투표를 받아들이기에는 기술적인 문제 외에 고려 사항이 많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미국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나타난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과 보안 문제, 익명성 보장의 문제 등 더욱 완벽하게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산업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부터 전 상장 계열사 주주총회에 전자투표를 도입, 소액주주의 주주권을 보장하고, 주주 및 시장 이해관계자들과 확고한 신뢰 관계를 조성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기업에도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액주주들도 모바일을 통해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국내 일부 기업의 주주총회 때마다 벌어지는 몸싸움 같은 부끄러운 모습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경영자들이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의 요구사항에도 귀를 기울이는 소통 경영이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계가 주주들의 주주권을 강화하고 직접 소통하기 위해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 정치권은 국민과 직접 소통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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