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서 시동이 꺼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전복된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운전자의 부주의가 사고 원인이라는 측과 제조사의 안전시스템 결함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모양새다. 제조사 책임을 주장하는 '대한민국 1호 자동차 명장' 박병일씨의 실험 영상은 3주 만에 조회수 120만건을 넘어섰다.
이 전복 사고는 작년 12월 26일 전북 미륵산에서 발생했다. 운전자는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SUV 팰리세이드에 자녀를 태우고 산길을 내려오던 중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차를 멈추려 했으나 브레이크가 평소와 달리 잘 듣지 않아 벽을 들이박고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5300만원 수준의 재산상 피해만 발생했을 뿐 운전자와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운전자는 현대차에 4억원 수준의 금전보상과 정비사 등 3명의 직원을 해고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번 사고가 일어난 배경에 차량 결함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운전자가 버튼식 변속기의 전진버튼(D)가 아닌 후진버튼(R)을 잘못 누른 뒤 내리막을 내려오다 보니 차량은 변속기 등을 보호하기 위해 엔진이 설정대로 자동으로 꺼졌고, 이를 인식하지 못한 운전자가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밟다 보니 제동을 위한 진공배력(브레이크부스터)이 점차 없어지면서 차량속도는 빨라지고 결국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1호 자동차 명장 박병일씨는 현대차의 주장을 반박하는 영상을 지난달 23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그는 “운전자 실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운전자가 전진기어를 넣든 후진기어를 넣든 시동이 꺼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명장은 △현대 투싼 △기아 쏘렌토 △쌍용 렉스턴 △쉐보레 말리부 △토요타 프리우스 △BMW 520 등 6개 차량을 내리막에서 후진 기어를 넣고 시동이 꺼지는 지 확인했다. 투싼과 쏘렌토는 시동이 꺼졌지만 말리부와 프리우스 등은 시동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 박 명장의 설명이다. 그는 “시동이 꺼지면 브레이크로 차 밀림 현상을 막기 어렵다”며 “차를 팔 때 고객들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현대차가 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오토기어’ 등 유명 자동차 유튜버들은 박 명장의 실험 결과를 뒤엎는 영상들을 게시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이들은 박 명장이 비교 차량을 변속기 자체가 다른 차량을 선택해 악의적으로 실험을 설계했다고 지적했다. 팰리세이드는 엔진에서 나오는 힘과 회전을 변속기에 전달하는 토크컨버터(토크 변환기) 방식이고, 실험한 차들은 그와 다른 수동기반의 자동변속기(DCT)가 들어 있거나 변속기가 없는 전기차였다는 비판이다. 이들은 브레이크부스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차량을 멈출 수 없다는 박 명장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설령 브레이크 부스터가 제 역할을 못 했다고 할지라도 제동장치는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기에 단단한 페달을 강하게 밟는다면 차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고 상황과 같은 상황의 경사도에서 실험을 하면서 여성이라도 힘껏 브레이크페달을 밟았다면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토기어 채널에선 박 명장이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오토기어’, ‘미디어오토’ 등에 올라온 실험 영상들은 2주 만에 20~40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박 명장은 지난 13일 사고가 난 상황에서 브레이크부스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브레이크페달을 힘껏 밟는 것으론 차를 세울수 없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이에 오토기어 측은 박명장에게 차를 세울 수 있는지 사고 난 장소에서 공개 실험을 하자는 영상을 바로 게제하며 논란을 지속해서 키우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연구소장은 “우선적으로 운전자의 잘못된 행위가 사고 유발을 유도했으나 제작사 역시 기어가 잘못 들어가도 알기 어려운 전자식 버튼의 특성을 사전에 고지할 필요가 있다”며 “버튼식은 단 한번의 누름으로 바로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이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설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전복사고가 있은 뒤 팰리세이드 사용설명서에 기존에 없던 후진기어로 비탈길을 내려가면 시동이 꺼질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