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셔츠에 검은 바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호랑이 눈’으로 레이저를 쏜다. 딱히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상대는 알아서 무너진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사진 오른쪽)와 경기한 수많은 경쟁자가 그랬다. 지난해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우즈 앞에서 무너진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8·이탈리아)도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우즈는 틈만 나면 몰리나리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팔짱을 끼고 몰리나리를 노려봤다. 미국골프채널은 “우즈의 우승은 엄청난 실력 외에도 상대를 겁먹게 하는 위압감이 있어 가능했다는 게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장타자’ 저스틴 토머스(27·미국)는 딴판이다. 우즈와 경기해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역대 전적이 말해준다. 14번의 동반 라운드에서 열 번 우즈보다 잘쳤고 세 번을 비겼다. 우즈보다 좋지 않은 스코어를 적어낸 건 단 한 번뿐이다.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팰리세이즈 리베이라CC에서 개막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총상금 930만달러)은 토머스와 우즈가 15번째로 만나는 무대다. 둘은 1, 2라운드에서 다시 한 조로 묶였다.
토머스는 왜 우즈에게 유독 강할까. 토머스는 대회를 앞두고 “우즈는 내 친한 친구다. 2015년 그가 많이 아플 때 찾아가서 친해졌다. 하지만 경기할 때는 다른 친구들과 할 때보다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갤러리가 몰리고 더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우즈는 토머스가 자신에게 유독 강한 ‘천적현상’을 ‘승부욕’으로 설명했다. 우즈 말대로 토머스는 ‘미스 샷’이 나오면 불같이 화를 내는 선수다. 욕설하는 장면이 중계카메라에 가장 자주 잡히는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우즈는 “토머스는 항상 우승에 목마른 선수”라며 “누구보다 우승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있고 경쟁심이 강하다”고 했다.
토머스도 우즈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경쟁자라면 그 사람이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박살’을 내고 싶은 승부욕이 발동한다”며 “그 사람이 타이거든 (또 다른 절친인 조던) 스피스든, 리키 파울러든, 잭 니클라우스든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그렇다”는 게 토머스의 말이다.
PGA투어는 토머스를 이번 대회 우승 후보 2순위에 올려놨다. 그는 지난해 4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며 우승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 날 4타를 잃고 준우승에 그쳤다. PGA투어는 “페덱스컵 리더 토머스가 복수를 위해 돌아왔다”고 했다.
우승 1순위 후보는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다. 리베이라CC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우즈는 6위에 자리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