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시련에 직면할 때 지도자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그 좋은 예가 ‘9·11 사태’ 직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보인 탁월한 리더십이다. 부시 대통령은 뉴욕으로 달려가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잔해에 올라서서 세계를 향해 외쳤다. “테러리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미국과 함께 그들과 싸울 것인가?” 그가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항공보안을 허술하게 했다”는 비난에 시달리며 연임도 못 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로 국가적 위기를 맞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초기에 정보를 통제해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인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데도 베이징은 인터넷 매체의 유언비어 통제에 매달리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마스크를 쓰고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시 주석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과거 천자가 외국 사신을 만나는 듯한 으리으리한 접견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직접 우한 사태를 지휘한다”고 했다가 “집단적으로 대처한다”고 슬쩍 꼬리를 내렸다.
미·중 무역전쟁이 빚어낸 ‘차이나 리스크’로 인한 외국 기업의 대탈출과 우한 사태라는 외우내환에 직면한 중국은 지금 중대 기로에 서 있다. 마오쩌둥식 1인 체제로 회귀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시 주석의 어깨가 무겁다. 그가 현명하게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붉은 중국’ 건국의 또 다른 아버지,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에게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힘이 세지더라도 미국에 도전하지 말라”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 교훈을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하는 중국몽(中國夢)이다. 그간의 고속 성장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으면 숨고르기를 해 경제를 좀 쉬게 하고, 보건환경·공해·복지 등에 국가 자원을 좀 더 투자했어야 했다. 그런데 30년 이내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며 불필요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항공모함을 만들겠다며 국방비에 엄청난 국가 자원을 퍼부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때 정보를 통제하다가 대재앙을 불러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방 정권이 허위로 식량 생산량을 보고하고, 이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 인민들이 식량부족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통제한 것이다. 다른 지방에선 식량이 남는데도 이런 정보 통제 때문에 4000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집단지도체제로 전환, 서서히 언론의 자유로 정보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 주석이 1인 체제로 역주행하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마오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았고, 대외관계에서도 주변국에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베이징의 지도자들에게선 저우언라이처럼 ‘마음씨 좋은 아저씨’ 이미지를 갖고 어려운 인민과 이웃 나라에 관용을 베푸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왕이 외교장관은 과거 조선에 와 거드름을 피우던 명나라 사신 같은 ‘속국 외교형’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앞세워 대외 외교를 하다 보니 남중국해 영토분쟁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해 수중 암초에다 군용 해상기지까지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친구와 멀어지고 적을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잘 말해주고 있다.” 오드 베스타 미 하버드대 교수의 따끔한 지적은 이런 사정을 말해준다.
진짜 ‘존경받는 중국’이 되려면 베이징이 변해야 한다. 우선 대외적으로 저우언라이식 관용과 포용을 보여줘야 한다. 대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중국 인민은 빵 문제를 해결해주면 공산당의 통제에 따르고 검은 하늘의 공해를 참았다. 하지만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인민은 변화를 원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구글을 검색해 중국 밖의 정보도 알고 싶어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한다. 이런 대내외 변화에 부응하려면 쓸데없이 주변국을 자극하는 중국몽을 다시 포장하고 시 주석의 리더십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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