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혁신의 갈등 자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늘 있어 왔다.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갈등이 더욱 빈발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법과 혁신 간 갈등의 역사가 던지는 교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신산업의 등장에 법이 전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진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 법의 ‘대원칙’이 돼야 하는 이유다.
‘타다’로 면허 없이 택시운송사업을 했다며 이재웅 쏘카 대표에 징역 1년을 구형한 검찰의 논리가 괴이하다. 불법적 운영으로 승객과 근로자에게 피해를 입혔다는데 무슨 실증적·과학적 근거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타다는 공급 측면에서 보면 현행법상 누가 뭐래도 합법인 ‘기사 딸린 렌트카’로부터 진화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느 디지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모바일앱(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상호 작용 패턴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이다. 시장은 보다 투명해지고 더 많은 공급자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경쟁할 수있게 된 것이다.
검찰은 “‘타다’ 이용 고객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콜택시를 탔다고 인식할 뿐, 자신이 쏘카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11인승 카니발을 빌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타다’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가 최종 서비스의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세세한 기술과 계약, 공급 방식의 차이까지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고 법이 강요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에는 다른 시장 또는 서비스였지만 기술의 진화로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는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동일 서비스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죄다 경쟁 상품과 서비스를 불법이라고 단정해버리면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올 수 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혁신과 규제 간 갈등 유형을 ‘경쟁자 갈등형’과 ‘기본권 충돌형’, 그리고 ‘가치 갈등형’으로 나눈다. 승차 숙박 등 공유경제에서 나타나는 동일상품 경쟁형과 함께 운하와 철도, 마부와 자동차, 타자기와 PC, 케이블과 IPTV 사례와 같은 대체재 경쟁형이 경쟁자 갈등형에 해당한다. 기본권 충돌형으로는 데이터 수집 및 활용 분야에서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대표적 사례이고, 가치 갈등형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윤리와의 충돌 등을 지칭한다. 이 교수는 가치 갈등형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고, 기본권 충돌형에서는 기본권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다 소송은 경쟁자 갈등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업자 간 경제적 이익 충돌 상황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대원칙이 있다. 해당 경쟁사업자 간 이익 조정이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시장경쟁의 촉진과 이를 통한 소비자 효용 극대화가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택시면허권자 입장에서 보면 면허 없이 개인 택시운송사업을 제공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을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하겠지만, 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기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동일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경우에도 여전히 기존 사업자의 법률상 이익을 강하게 보호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해당 사업자 간 이익조정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되는, 답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 사업자는 새로운 사업자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새로운 사업자는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소비자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허용 필요성을 말한다. 이 대립되는 주장이 규제 적용의 차별과 이로 인한 경쟁조건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적합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 맞는다.
동일한 경쟁조건을 보장할 가장 단순한 방법은 두 가지다. 기존 사업자에 대한 규제도 아예 없애든가, 아니면 새로운 사업자에도 기존 규제를 똑 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현행 택시 규제를 폐지하자는 전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현행 규제가 기존 사업자의 보호를 위한 진입장벽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법이 기존 사업자를 혁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와 국회가 가치 충돌형에나 어울릴 사회적 합의라는 처방을 경쟁자 갈등형에 억지로 적용해 이끌어낸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새로운 사업자에도 기존 규제를 같이 적용하자는 후자의 처방에 가깝다. 이미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종래의 규제를 새로운 사업자에 그대로 적용하면 소비자들이 맛보기 시작한 편의성 등 후생 수준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검찰의 신산업 인식도 이번 소송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새로운 유형의 신산업이라고 해도,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육성돼야 한다”고 했다. 법은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예측해서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사안에 대해 기계론적인 법 적용을 고집한다는 것이 법 취지로 보나 정의로 보나 과연 맞는다고 할 수 있는가? 법 해석은 현실에 부합해야 하고 법적 안정성 또한 동태적으로 해석돼야 하는 것 아닌가?
혁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질서를 깨는 것이다. 오로지 현행법 테두리만 따졌으면, 그래서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도전을 다 위법으로 몰았다면, 검사들이 지금 타고 다니는 자동차, 책상에서 쓰고 있는 컴퓨터, 손에서 놓고 싶어하지 않는 스마트폰이 가능했겠는가?
마부와 철도업계의 거센 반대와 치열한 로비로 자동차를 규제했던 영국의 ‘적기조례법’이 폐지되기까지 30년 이상 걸렸다. 당시 영국에서 신흥기술 자동차 산업을 죽이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앞서가는 정부와 정치라면 어떤 혁신이 등장해도 길을 열어주는,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에 눈 감은 정부, 뒤로 가는 정치에 국민도 기업인도 지칠대로 지쳤다. 이 땅의 검찰은 한술 더 떠 이런 정부와 정치의 파수꾼, 아니 그 보다 더한 퇴행적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이제 법원의 판결만 남았다. 법원까지 시대를 역행하는 정부와 정치, 검찰은 물론 기득권 집단과 공범이 되고 말지, 아니면 ‘법은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을 보호한다’는 대원칙을 분명히 하는 판결이 한국에서도 나올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안현실 논설 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