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실세’를 수사하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지방으로 떠나게 된 검사의 새로운 부임지에 “좌천을 축하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내걸렸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동훈 검사장이 지난 달 13일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부임한 이후 한 검사장을 조롱하는 현수막(사진)이 부산고검 청사 정문 앞에 걸렸다. 현수막에는 “한동훈 검사 부산고검으로 좌천됨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경축 자나깨나 한동훈 조심, 없는 죄도 다시 보자”는 말이 쓰여 있다.
한 검사장은 지난해 7월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임명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범죄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의 수사 지휘를 담당했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후 이례적으로 6개월 만에 고위간부급 검찰 인사를 또 단행하면서 부산고검으로 내려가게 됐다.
한 검사장과 함께 조 전 장관 의혹 수사를 이끈 송경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은 여주지청장으로 발령 났다.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지휘한 박찬호 검사장과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각각 제주지검장과 평택지청장으로 전보됐다.
현 정권 실세에 대한 수사를 주도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들을 수사 진행 중에 대거 지방 한직으로 발령 내면서 ‘추 장관의 검찰 인사 대학살’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현수막 하단에는 “부산 ‘좌천’역을 통과, ‘사직’역까지 직행 - 부산깨시민일동- ”이라는 말도 적혀있다. 좌천동과 사직동 등 부산의 지역 이름을 이용해 한 검사장에 대한 사퇴 요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깨시민은 ‘깨어있는 시민’의 준말로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전 장관 지지층을 일컫는 표현으로 쓰인다.
‘부산깨시민일동’이 부산고검 앞에 내 건 현수막은 불법이지만 관할 구청은 사실상 단속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근시간대에만 걸어놨다가 중간에 철거하는 방법을 반복하고 있어서다.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따르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은 현수막의 크기, 게시 위치, 기간, 개수, 내용 등을 점검해 현수막 게시를 허가한다. 허가받지 않은 현수막을 설치한 사람은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받을 수 있다.
부산지역에서 한 검사장을 응원하는 시민들은 그를 조롱하는 불법 현수막이 나타날 때마다 구청에 신고를 하지만 현수막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수막을 놓고 한 검사장을 옹호하는 시민과 비판하는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 정권의 비리 의혹 수사를 지지하는 부산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알아보고 인증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실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터넷 팬카페엔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한동훈 검사장을 발견해 ‘화이팅’을 외쳤다는 부산시민들의 인증샷이 다수 올라와 있다.
조 전 장관의 무혐의를 주장한 상급자에게 “당신이 검사냐”며 상갓집에서 항의를 하면서 유명해진 양석조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와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서울중앙지검장이 머뭇거리자 ‘차장결재’로 기소한 송경호 지청장 등도 좌천된 지역에서 응원의 편지를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모 검사는 “음식점 주인이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응원 차원에서 추가 요리를 무료로 서비스해주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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