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34㎝, 무게 3.8㎏의 금빛 오스카 트로피를 제작하는 데는 400달러(약 48만원)가량이 든다. 하지만 그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면 배우와 영화의 가치는 확 달라진다. 외신 등에 따르면 배우들이 남녀주연상을 받으면 몸값은 평균 20% 뛴다. 작품상을 받은 영화의 박스오피스 흥행 수입은 평균 1500만달러(약 179억원) 늘어나고 다른 수상작들의 흥행에도 탄력이 붙는다. ‘기생충’이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쥐면서 한국 영화산업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기생충’은 세계가 한국 영화를 다시 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휩쓸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후광효과로 한국 영화의 세계 티켓 매출 역대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날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등 31개 국가를 합산한 박스오피스 매출은 1억6536만달러(약 1970억원)를 기록 중이다. 종전 1위 ‘명량’은 1억3834만달러였다. ‘기생충’은 이날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세계 62개국에서 개봉했다. 총 202개국에 수출돼 앞으로 추가 개봉이 예상된다.
‘기생충’은 북미지역에서도 각종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10월 11일 북미지역 3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날 38만4216달러(약 4억5600만원)를 벌어들였다. 북미에서 개봉한 외국어 영화로는 최고이자 2016년 할리우드영화 ‘라라랜드’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흥행 호조에 힘입어 ‘기생충’의 상영관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후 1060개까지 늘어났다. 박스오피스 매출은 3547만달러로 북미에서 개봉한 역대 외국어 영화 흥행 6위에 이름을 올렸다.
CJ ENM 관계자는 “미국 현지 제작사와 진행 중인 합작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미국 드라마로 제작하는 작업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영화 ‘바이스’ ‘빅쇼트’ 등을 연출하고 최근 HBO에서 제작한 ‘석세션’ 시리즈를 통해 호평을 받은 애덤 매케이와 함께 봉 감독이 드라마판 ‘기생충’을 만들기로 한 것. 봉 감독의 ‘설국열차’도 미국 드라마로 제작돼 오는 5월 31일 워너미디어 케이블채널인 TNT에서 처음 방송될 예정이다.
CJ ENM은 미국 제작사와 ‘숨바꼭질’ ‘오로라’ ‘하우스메이드’ ‘슈퍼팬’ 등 10여 개 영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숨바꼭질’ ‘수상한 그녀’ 등은 한국 영화 리메이크작이지만 ‘오로라’ 등 대부분의 작품은 현지 제작사와 협업해 기획, 창작하고 있다.
롯데컬처웍스, 쇼박스, NEW, CGV 등도 동남아시아 로컬 콘텐츠의 투자, 제작, 개발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현지와의 합작 프로젝트들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쇼박스 수출담당자는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각국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높아져 수출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전체 한국 영화의 수출가격을 20~30% 정도 끌어올릴 호재로 보고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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