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임원들을 불러 모아 “공동사업 아이디어를 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제2의 반도체가 될 만한 신사업을 5대 그룹이 함께 찾고, 공동 연구개발 및 투자에 나서면 정부도 이를 국책사업으로 삼아 수십조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요청’과 ‘제안’이란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기업인들이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을 단순한 ‘권고사항’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김 실장의 발언은 반도체 이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미래 먹거리 창출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으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경쟁과 경영 측면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좋게 말해봐야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신사업을 결정하는 것은 고도의 경영판단에 속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신사업과 관련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발상이자 관치(官治)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와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사업거리가 없거나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적 자치가 기반이 돼야 할 기업과 시장을 규제와 간섭의 대상으로 여기며 정권 뜻대로 움직이겠다는 ‘명령경제’가 만연한 탓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것은 정부·여당이 설계주의에 입각해 먹고사는 현실문제인 경제를 좌파이념의 영역으로 밀어 넣은 탓이다. ‘촛불 명령’을 운운하며 이른바 ‘공정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워 기업을 옥죈 결과는 사회적 약자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명령경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 정책으로 대기업과 공기업 근로자 등 노동시장 상층부가 주로 혜택을 보고 있다. 정작 보호하겠다는 중소기업과 저임금 근로자들은 줄어든 임금과 일자리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은 인력난과 인건비 급등을 견디지 못해 사업을 줄이거나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일부만 이익을 보고 대부분은 손해를 보는 자해적인 정책이다.
기업인을 의심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기업인 유죄추정주의’에 의거해 경영을 핍박하는 것도 전형적인 ‘명령경제’의 모습이다. 기업 경영의 손발을 묶는 상법 개정, 경영권을 위협하는 “걸리기만 해 보라”는 식의 산업안전보건법 강행으로 기업인을 겁박하는 법제도 앞에서 투자가 살아나기는 어렵다.
정부·여당은 더 늦기 전에 경제 주체인 기업의 역량을 쪼그라들게 하는 ‘명령경제’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로만 ‘경제 활성화’를 외치지 말고 국가 경제의 고용·성장의 근원인 기업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 반(反)기업 정책을 거둬들이는 게 급선무다. 그러자면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가르치고, 규율하겠다는 그릇된 발상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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