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공공칠빵"….
손가락 흉내부터 장남감, 오락실까지. 흔히 말하는 '총싸움'은 어릴 때부터 단골 놀이소재였다. 영화나 미국드라마에서 시원한 총기 액션을 볼 때면 '나도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면서 총에 대한 꿈을 꿔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슈팅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해 오버워치 등과 같이 e스포츠로 발전했다. 총을 쏴서 적을 처리하는 쾌감과 실감나는 액션, 무엇보다 죽지 않으니 안심이다. 총기 사용은 국내에서 오묘한 상황이다. 일반인에게 총기사용이 금지됐지만, 군대를 다녀온 성인 남성이라면 실탄을 써본 경험이 있어서다. 운전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연습을 하다가 실전을 하는데, 사격만큼은 실전경험이 있음에도 제대를 하게되면 '가상현실'을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사격이라고 하면 올림픽에서 3연패를 한 진종오 선수가 떠오른다. 권총을 들고 타깃에 집중하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역동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부 동호인을 중심으로 실제 '전투사격'인 익스트림 스포츠가 붐을 타고 있다. 국제스포츠실용사격연맹(IPSC)이 개최하는 세계 스포츠 사격대회다. 산속같은 야외에서 돌발적으로 주어진 코스에 따라 장애물 사이의 타깃을 쏘는 방식이다.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졌지만, 몇 년전부터 한국인 선수가 세계대회를 휩쓸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바로 김환식 선수(32세·사진)다. 미국을 주무대로 활동중인 김환식 선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100개국이 넘는 회원국 보유하고 있는 IPSC의 한국법인인 IPSC 코리아와 회원들을 만났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강의와 시범을 보여주면서 회원들과 호흡했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3년, 군대를 제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위해 떠났다. 시애틀로 갔는데 경찰관을 공부하던 친구와 어울리게 됐다. 그 친구가 한국에서 게임방을 가듯이 사격장을 가자고 했다.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따라갔더니 권총이 어러 자루가 있었다. 그렇게 사격을 처음 접하게 됐다."
-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격을 많이 접하지 않나.
"나는 보직이 운전병이었다. 총을 쏠 기회가 거의 없었고 권총은 아예 없었다. 미국에서 권총을 처음 접했을 때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그 때부터 총기 허가자격증을 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 유학중이었는데 제약은 없었나.
"처음에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종교와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공부양이 많았다. 그러다가 시간을 내서 미국에서 열리는 IPSC 연습 대회를 구경가게 됐다.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당시 내눈에는 그것보다 더 멋있었다. 그 때부터 안전교육을 비롯해 선수들이 갖춰야할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연습하기 시작했다."
- 언제 첫 경기를 참여하고 프로로 전향하게 됐나.
"2014년 7월께 첫 경기에 참여하게 됐다. 출신이나 인종에서 튀는 면이 있었다. 나는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경찰이나 군인출신들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총기를 많이 다뤄보던 경력들이었다. 동양인이 드문데다 한국인은 대회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상관없을 정도로 재미를 붙였다. 문제는 사격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연습과 학교를 병행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면서 결정을 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사격으로 지지를 해줬다. 2015년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2017년 프로로 전향을 하게 됐다."
- 프로라고 하면 스폰서십을 받게 되는 건가.
"독일 총기회사인 발터사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훈련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코칭을 하고, 오늘같이 직접 클래스를 만들어 강의하기도 한다. 영주권이 있고 사는 곳이 미국이다보니 주로 미국에서 활동을 한다. 현재 IPSC 규정상 국가 소속은 거주하는 곳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김환식 선수가 후원을 받기까지는 그만큼 단기간에 성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IPSC가 3년마다 주최하는 월드 챔피언십(XVIII World Shoot, 최고수준 레벨5)에 한국인 최초로 출전해 455명 중 19위를 기록했다. 이를 기점으로 세계적인 대회에서 상위권을 싹쓸이 하다시피 하고 있다.
2016년 USPSA Area1, 프로덕션 챔피언을 비롯해 △2017년 USPSA Carry Optics 미국 전국대회 2위 △2017년 IPSC 미국 전국대회 프로덕션 종목 3위 △2018년 USPSA Carry Optics 미국 전국대회 2위 △2019년 익스트림 유로 오픈 프로덕션 옵틱 1위 △2019년 IPSC 캐나다 전국대회 1위 △2019년 유로피안 핸드건 챔피언쉽 프로덕션 옵틱 2위 △2019년 IPSC 미국 전국대회 프로덕션 옵틱 2위 등 주요 경기의 전적만 열거해도 숨이 찰 지경이다.
지난해 체코에서 열린 ‘익스트림 유로 오픈(EXTREME EURO OPEN)’에서 권총 핸드건 프로덕션 옵틱스 부문에서는 1위를 했다. 전년도에 9위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1100여명 중 1위로 뛰어올랐다.
- 그래도 총기사용이라고 하면 '위험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미국은 총기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만큼 안전규칙도 발달되어 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 물리적인 규칙 뿐만 아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은 도핑테스트를 한다. 술, 마약 등을 한 후에 대회에는 참여할 수 없는 거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건 총기를 '무기'로만 보는 사회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총기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장비'로 보게 된다. '위험한 무기'라기 보다는 스포츠로 즐기는 위한 '장비'인 셈이다. 유사시에는 나를 지켜줄 수도 있다. 건장한 남자들만 총을 쏘는 게 아니다. 실제 미국에서는 방학 때 쥬니어캠프에 가면 총기교육이 포함된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사격대회에서도 장애인이나 군인이었다가 부상을 입은 선수들도 있다. 운동이라는 게 신체를 단련시키다보니 건장한 남자들이 유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사격은 나이가 많건 적건,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도전해 볼 수 있는 스포츠다."
- 대회 얘기로 넘어가자.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순위가 가려지게 되나.
"빠르고 정확한 게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코스에 들어가서 시간을 재는데 마지막 발을 기준으로 총 시간이 된다. 여기에 타깃을 얼마나 정확하게 맞췄는지도 반영이 된다. 코스는 대략 어떤 형태겠구나 정도 추정이 가능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그날 코스가 공개된다. 그만큼 빠른 판단으로 타깃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
- 개인적인 목표가 있는지.
"기회를 잘 만나서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선수까지 성장을 하게 됐다. 사격을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세계 챔피언이 되어야 겠다'도 꿈을 꿨는데, 실제로 이뤄졌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 때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올림픽에도 도전하고 싶다."
- 한국에서도 이러한 '전투 사격'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국내에서는 무기라는 인식 때문에 처음에 시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 국내에서 연습도 비비탄과 같은 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이외에서는 인식이 좋은 편이고, 1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대회들도 매년 열리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과 패기가 경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한국의 큰 장점은 '예비역'이 많다는 것이다. 총기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게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다."
국내에서는 IPSC KOREA가 2018년 9월에 출범해 현재 72명의 멤버가 가입되어 있다. 이중 글로벌 실탄사격 매치에 나갈 수 있는 레벨이 되는 멤버는 45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는 권총, 라이플, 산탄총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국제 멤버쉽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총기가 허가되지 않는 나라지만, 뛰어난 슈팅기술로 총기허가국들의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고 있다. 국내 여자 선수는 2019년 오스트라시아 월드핸드건챔피언쉽에 프리매치에서 168명의 선수들과 겨루어 42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외에도 세계대회에서 중간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