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도 슈베르트란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대표작인 ‘세레나데’와 ‘아베마리아’는 작곡된 지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가장 순수하면서도 영롱한 멜로디를 갖고 있고, 그 멜로디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한순간에 와닿진 않더라도 천천히 은은하게 우리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뇌리에 남는 마력을 지녔다.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슈베르트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보고 놀라기까지 한다. 이처럼 심금을 울리는 곡을 쓴 슈베르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동그란 안경 뒤로 보이는 선한 눈매, 매력적인 곱슬머리, 가을 낙엽이 흩어진 공원 벤치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앉은 그의 사진을 보고 반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기대하시라! 하지만 실제 그의 키는 150㎝도 되지 않았다. 그가 입은 옷은 청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그에게서 악취가 진동해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면 “여기 슈베르트가 왔나?”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점들이 작곡가의 아이러니컬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원동력을 주는 악성 베토벤은 산발한 머리의 주정뱅이였고, 콘서트홀을 무너뜨릴 것 같은 거대한 사운드를 만든 쇼스타코비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작곡가의 모습과 작품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마치 시인이 맞춤법을 틀리는 일이나 수학자가 거스름돈을 계산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범하는 사소한 실수나 겉모습과는 다르게 이들의 창작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타성이나 위선도 없는, 가장 순수한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이다. 온 마음을 바치고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기에 우리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외길을 홀로 걸으며 더 깊은 감동의 음악적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작곡가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이들의 음악을 다시 듣고 연주하며, 이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리며,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나는 질문한다. 슈베르트와 베토벤을 닮은 정치인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지….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설사 슈베르트처럼 악취가 풍기더라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는 슈베르트 음악보다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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