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원제는 ‘황제의 새로운 옷’)이 주는 교훈 중 하나는 사람들이 사회적 인습이나 조직 문화에 젖어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이익 공동체 내의 침묵하는 다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어린아이의 한마디가 진실을 파헤치고 문제를 해결한다.
정보기술이 혁명적인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도 이 동화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집단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응집력 강한 소규모 집단의 구성원이 대안 제시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고 쉽게 결정을 내리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집단사고에 빠지면 똑똑한 다수도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기 쉽다.
집단사고의 대표적 예로 피그스만 사건을 들 수 있다. 1961년 4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군이 피그스만에 상륙, 쿠바 점령을 시도하다 쿠바군에 전멸당한 사건이다. 작전을 앞두고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보좌관들은 수차례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1400명가량의 반카스트로 인사들이 쳐들어가면 20만 명이나 되는 쿠바군을 패퇴시킬 것으로 믿었다. 반대 의견은 들리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케네디도 의심하지 않았다. 집단사고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인 2001년 9·11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것도 집단사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기독교도이자 남자 백인으로 구성된 CIA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오사마 빈라덴과 무장조직 알카에다가 성전(聖戰)을 기치로 대규모 테러를 자행할 지지 세력을 구축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집단사고는 반대 의견 배격
집단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인적 충원을 다양화해야 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협업은 필수다. 예컨대, 오늘날 과학·공학 분야 논문의 90%는 개인보다는 팀에 의해 제출된다. 상이한 관점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팀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창의적 문제 해결에 유리하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는 다원화된 수평사회다. 문화 간 소통과 융합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사회다. 이런 시대에 ‘대동단결’ ‘우리가 남이가’ 구호가 지배하는 ‘끼리끼리 문화’는 미래가 없다. 집단의식과 혈통주의로 무장한 나치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는 패배했다. 반면, 최강대국 미국은 각종 인종과 문화가 뒤엉킨 거대한 샐러드볼이다. 유행의 도시 파리에 획일적인 유행은 없다. 다양한 개성을 자랑하는 파리지앵 개개인이 자기 유행을 창조할 뿐이다. 복합문화 경험자들은 새로운 사업 구상에서도 경쟁 우위를 갖는다. 미국 인구 중 이민자 비중은 13%인데, 스타트업을 시작한 미국인의 이민자 비중은 27.5%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란 단지 남녀 성비나 인종 간 균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구성원의 다양한 지적·문화적 배경이다. 1990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몰락을 초래한 인두세 도입을 보자. 정책 입안자는 대부분 일류 대학을 나온 상류층에 속했다. 납세 능력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부과되는 인두세가 저소득층에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이들이 헤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양성의 절차적 보장이 중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의 절차적 보장이다. 즉,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표명된 의견이 존중받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 없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이 팀워크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심리적 안전을 보장하면서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이다. 팀원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무기명으로 적어 제출한 뒤 팀 단위로 평가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침묵의 브레인스토밍’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소위 말발 센 리더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구성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데 효과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전략회의를 자주 한다. 회의 참여자의 문화적 다양성은 전략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다. 문화적 차이는 토론에 임하는 태도에도 투영된다. 대립 회피 문화에서는 공개적인 반박과 논쟁이 조직의 화합을 저해하며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구와 같은 대립 문화에서는 반박이나 논쟁을 통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기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을까. 연고주의에 기반한 폐쇄적 인적 충원이 효율성을 저해하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상명하복과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아직도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은가.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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