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신년 벽두에 ‘검찰발(發) 쓰나미’를 맞았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폭력사태’와 관련해 현직 국회의원 28명이 형사재판에 무더기로 넘겨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 등 지도부와 현직 의원만 20여 명이 기소됐고, 일방적 피해를 주장한 더불어민주당도 의원 다섯 명이 형사처벌 위기를 맞게 됐다. 3개월여 남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패스트트랙 재판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檢, “고발된 한국당 전원 혐의 있어”2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공수사부(부장검사 조광환)가 재판에 넘긴 한국당 지도부와 현역 의원은 총 24명이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현역 의원 13명과 황 대표 등 총 14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국회 회의장 소동 등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겼다. 범행에 관여했으나 물리력 행사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곽상도, 김성태, 장제원 등 의원 10명은 약식기소했다. 나머지 의원 37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패스트트랙 사태에 고발된 한국당 의원 60명이 모두 일부 혐의가 있다고 봤다.
민주당에서는 이종걸, 표창원 의원 등 네 명이 공동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종걸 의원은 한국당 당직자의 목을 조르고 폭행한 혐의, 김병욱 의원은 김승희 한국당 의원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가한 혐의를 받았다. 박주민 의원은 약식기소됐다. 검찰은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총 31명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민주당의 권미혁, 소병훈, 유승희 등 의원 6명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오신환,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등의 사보임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회의 방해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사보임이 불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국회법 입법 과정과 의결안의 취지, 국회 선례 등을 봤을 때 ‘동일 회기’에만 사보임을 금지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오신환, 권은희 의원은 지난해 4월 회기 중 사퇴했지만 2018년 회기 때 사개특위 위원이 됐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檢, 청와대 권력에 굴복”한국당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청와대 눈치 보기식 하명 기소”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는 “우리가 투쟁을 시작한 패스트트랙은 그 자체가 불법이고 출발은 불법 사보임에서 시작됐다”며 “불법에 대한 저항은 무죄”라고 했다. 황 대표는 “우리가 기소된 사안 전부에 대해 무죄를 주장할 것이고 정의는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희대의 정치 탄압 기구로 악용될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검찰 장악의 특명을 받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명과 동시에 검찰은 곧바로 청와대 권력에 굴복했다”며 “명백한 정치 보복성 기소이자, 정권 눈치 보기식 하명 기소”라고 주장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김관영 당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의 불법 사보임 혐의에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데 대해서는 “정치적 면죄부를 주고 국회법 위반 사실을 눈감아준 결정”이라며 “야당 궤멸 기소의 배후인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우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겠다”고 강조했다.
與 “秋 임명 날 보복성 기소”민주당은 “추 장관 임명에 반발한 검찰이 한국당과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춰 민주당을 처벌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를 열 명이나 기소한 것은 검찰의 작위적 판단”이라며 “기소당한 네 명의 민주당 의원이 대부분 (검찰 개혁법안을 맡은) 국회 사법개혁특위 출신인 점을 고려하면 명백한 보복성 기소”라고 했다.
여당은 검찰이 이날 기소를 발표한 것은 추 장관 임명에 맞춘 정치적인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 당 지도부가 신임 법무부 장관의 패스트트랙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 지휘권 발동을 언급하자마자 기소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이날 기소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추 장관 임명 날 기소한 점에 대해 그 시점과 수사 방법이 오묘한 것에 혀를 찰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은 현직 의원 28명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 판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 전까지 재판이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며 “각 당으로서는 의원직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공천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소현/노유정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