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훌쩍 커버린 국력을 믿고 버릇없이 한국을 대하고 있지만, 매사에 그런 건 아니다. 자기들이 넘볼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존재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메모리반도체 챔피언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의 몇몇 세계적 기업들 앞에선 함부로 굴지 못한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꼼짝 못하는 게 있다. 축구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치졸한 사드 보복을 감행하고 제멋대로 전투기를 한국 방공구역에 띄우는 도발을 해대고 있지만, 축구 얘기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 ‘타도 한국’을 외치며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도 국가대표 경기에서 한국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다. 14억 인구의 나라가 5000만 명 국가의 축구팀을 만나기만 하면 늘 쩔쩔매는 바람에 ‘한국공포증(恐韓症)’이란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 삭막한 시간을 보냈지만, 가슴을 펴게 한 일도 적지 않았다. 문화예술과 스포츠에서 특히 그랬다. K팝에서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휩쓸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골든 글로브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는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스포츠에서도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는 소식이 잇따랐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대표축구팀이 주요 대회에서 연속으로 전한 승전보는 많은 사람을 환호케 했다.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의 최강자로 끌어올린 그의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베트남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그의 성공은 동남아 최대 면적·인구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인 감독(신태용)을 영입케 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중국 프로축구팀에 거액에 스카우트돼 온 데 이어 동남아 국가대표 팀들로까지 ‘축구한류(韓流)’가 퍼져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인 영국프리미어리그(EPL)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등 선수들의 최정상급 활약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축구팬들을 사로잡았다.
야구선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투수 류현진 선수가 올해 미국 프로야구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내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산 괴물(monster)’의 위용을 떨쳤다. 그 성가를 인정받아 토론토 프로야구단(블루제이스)에 4년간 8000만달러(약 929억4000만원)를 받는 조건으로 영입됐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대우를 받은 건지는 동갑내기 일본인 투수 야마구치 순의 같은 팀 입단조건(2년간 625만달러)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야마구치는 올해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며 다승(15승) 1위에 오른 일본 내 최정상급 투수였지만, 류현진을 쳐다볼 수도 없는 처지다. 한국 프로야구팀 SK에서 뛰다가 미국팀 세인트루이스(카디널스)에 입단한 김광현(2년 총액 800만달러)이 야마구치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는 게 오히려 뉴스거리다.
한국인들이 세계무대를 휘젓고 있는 분야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정부 규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K팝 영화 드라마 등 문화예술과 스포츠분야 모두 참여자들이 활동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현하고 치열한 연습을 통해 최선의 실력을 발휘하면 시장이 합당한 평가를 내려준다. 정해진 규칙 외에는 일체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행정당국의 예측 불가능한 개입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참가자들 간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지만, 빼어난 자질과 굳센 의지를 가진 사람은 겁낼 게 없다.
성실하게 노력해 성취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신상필벌(信賞必罰)도 엄정하다. 특정 참여자가 너무 앞서나간다고 해서 ‘양극화 확대’라며 발목을 잡지 않고, 주당 52시간 이상 연습해서는 안 된다며 족쇄를 채우는 일이 없고, 일률적인 은퇴연령을 적용하지도 않는다. 반도체 자동차 등 세계 정상수준에 오른 전통 산업도 정부가 덜 간섭하는 시절이 있었던 덕분에 오늘의 기반을 닦았다. 인재의 보고(寶庫)는 여전한데 덜떨어진 설계주의가 한국 사회의 활력을 틀어막고 있다. 그 모순을 깨부수고 생동감 넘치는 사회를 복원하는 것을 새해, 새로운 10년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haky@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