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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세계 시장 도전하려 독일 기업에 매각 … '골목 배달' 넘어 '글로벌 배달'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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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펼치는 거죠. 제가 세운 가설(사업 모델)을 세계 무대에서 증명하겠습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지난 30일 한국경제신문에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된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그는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았다는 점보다 내가 구상한 사업을 현실에서 증명했다는 점이 더 뿌듯하다”며 기업가의 본질과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2010년 자본금 3000만원을 손에 쥐고 우아한형제들을 일으켰다. 길거리에서 모은 5만 장의 음식점 홍보 전단을 기반으로 개발한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이 대박을 터뜨렸다. 13일 독일 동종 업체 딜리버리히어로에 회사를 매각했다.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4조7500억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그는 11개국의 배달 앱 사업을 이끄는 딜리버리히어로 아시아총괄대표를 맡게 된다.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혁신이라고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로봇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혁신도 있다”며 “불편을 해소해주는 서비스에 이용자가 기꺼이 대가를 지급하면 그게 바로 혁신”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타다’도 같은 맥락의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규제를 둘러싼 갈등의 표출이 잦은 것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창업가가 많을 때 규제 이슈가 부각된다”며 “공무원의 힘이 세고 법체계도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한국만큼 첨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을 ‘혁신가들의 나라’라고 희망적으로 평가한 배경이다.

지난 30일 찾은 잠실 우아한형제들 사옥.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18층 휴게실엔 회사의 미래 목표를 적어놓은 게시판이 있다. 2027년 ‘배민키친’ 남극점을 열고 2035년 업계 최초로 우주로 음식을 배달한다는 목표가 적혀있다. 이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직원 전체가 연말 휴가를 떠나 텅 빈 잠실 사옥에서 새 출발을 앞둔 김 대표를 만났다.
<hr >국내서 수비만 하면 글로벌 기업들에 고립돼
매각은 결국 아시아 11개국으로 사업영토 넓힌 것

▷전례가 없는 방식의 엑시트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상장하고 한국 시장에서 계속 사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수비만 하다가 고립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지요. 배민은 한국 시장을 잘 지켜온 회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시장에 고립돼버렸죠. 고민 끝에 우리와 경쟁하는 큰 세력과 손을 잡고 해외를 진출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장을 지키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던 배민이 아시아 11개국으로 영토를 넓혔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달의민족’의 주인이 독일 회사로 바뀐 것을 두고 뒷말이 많은데요.

“이제 ‘게르만 민족’이란 얘기 저도 듣고 있습니다. 한국은 자본의 국적에 예민한 나라에요. 저희를 향한 걱정과 비판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결국 사업하는 사람은 성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성공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배민 플랫폼을 이용하던 자영업자들은 수수료 부과를 걱정합니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M&A(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할 때 처음으로 내 건 조건이 ‘수수료나 광고비를 올리지 않는다’였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 측도 동의했고요. 저는 앞으로 아시아 11개 국가의 사업을 총괄합니다. 한국에서 수수료를 1~2%를 올리는 것보다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나라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에요. 굳이 한국에서 반대 여론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이 논란은 우아한형제들이 한국에서 상장했다고 해도 똑같았을 겁니다. 한국 주주라고 이익이 늘어나는 쉬운 길을 마다했을까요.”



▷딜리버리히어로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 경영진들과는 업계 친구 사이에요. 우아한형제들과 창업 연도가 비슷해 2011년부터 만났습니다. 매년 제가 독일을 방문했고 그쪽도 한국을 자주 찾았죠. 저희가 직원이 6명이던 시절부터 ‘살림을 합치자’는 얘길 했어요. 우린 한국 사업도 제대로 못해 쩔쩔 매는데 거긴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들을 다 파악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요기요를 포함해 사들인 회사가 35개나 되요. 국가의 틀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홈그라운드인 독일 법인을 매각해 1조원의 현금을 마련한 후 마케팅비로 쓰라고 한국에 보내는 게 딜리버리히어로란 회사에요.”

▷인수합병 외에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음식 문화에 대해서 주로 얘기했어요. 1인 가구가 대세로 자리잡으면 음식 문화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죠. 음식에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니즈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 했어요. 사실 지금은 4~5인 가구의 음식 문화도 1인 가구와 비슷해요. 한 집에 살아도 각자의 취향껏 따로 배달시켜 먹는 시대죠. 1~2인 가구를 여러 개 합쳐놓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우아한형제들이 딜리버리히어로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요.

“글로벌 감각과 숫자를 다루는 능력은 딜리버리히어로가 앞서지만 마케팅과 엔지니어링 능력은 저희가 한 수 위에요.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말랑말랑한 마케팅을 잘한다고 판단해서 아시아 시장을 저희에게 통째로 맡긴 것이죠. 아시아 시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IT(정보기술) 역량에 대해선 의견이 갈립니다.

“하루에 배달의 민족으로 들어오는 주문이 어지간한 대형 온라인 쇼핑몰과 비슷해요. 저희가 온라인몰과 다른 점은 점심과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다는 겁니다. 매일 하루에 두번씩 ‘트래픽과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는 얘기죠. 한국만큼 특정 지역에 주문이 집중되는 시장은 흔치 않습니다. IT 기술력이 없으면 플랫폼을 관리하기 힘들어요.”

▷우아한형제들은 기술 인력에 대한 처우가 좋기로 유명합니다. 다른 직군에서 차별이라는 반발은 없었나요.

“디자이너들이 ‘대표가 디자이너라 많이 챙겨줄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저는 개발자가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자동차 광고를 잘 만들어도 제품이 시원찮으면 잘 안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마케팅은 품질 다음의 문제입니다. 엔지니어를 키우기 위한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4~5년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죠. 그렇게 훈련받은 기술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고 실력도 좋습니다.”

▷최근엔 로봇 배달 사업에도 공들이고 있지 않나요.

“서울은 아파트가 밀집한 드문 도시예요. 소비자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하기 좋습니다. 소프트웨어 처리도 용이하고요. 홍콩이나 일본처럼 주거 형태가 복잡하면 로봇으로 배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로봇 배달의 효과는 이미 증명됐습니다. 아파트 1층까지는 라이더가 1층부터 집까지는 로봇이 책임집니다. 로봇을 쓰면 라이더의 생산성이 30%쯤 올라갑니다. 앞으로 배달 시장이 지금보다 3~4배쯤 커질텐데 그 때가 되면 로봇이 진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제 수수료를 폐지하는 등 남다른 의사결정으로 유명합니다.

“창업자인 저부터가 비주류에요. 다른 창업자들처럼 가방 끈이 길지도, 남다른 기술을 가지지도 못했죠. 남들처럼 생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박혀있어요. 회사가 브랜드 마케팅을 하면서 내세우는 ‘B급 문화’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머리를 짧게 밀고 수염을 기른 제 외모도 마찬가지에요. 다른길로 가자고 스스로에게 암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맡으면서 정부에 쓴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2016년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만든 단체에요.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스타트업 단체는 없는 게 정상이죠. 스타트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에도 코스포 같은 단체는 없어요. 그만큼 한국이 규제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코스포 활동을 통해서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스타트업 창업자의 차등의결권이나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게 대표적인 사례에요. 규제 논란이 한국에서 불거지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봐요.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창업가가 많을 때 규제 이슈가 부각됩니다. 공무원의 힘이 세고 법체계도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한국만큼 첨예하지 않아요. 창업이 활성화돼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규제 문제는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요.”

▷‘타다’를 운영하는 VCNC처럼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곤란에 처한 기업도 많습니다.

“사라져갈 것에 대한 배려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에요. 한국은 특히 힘들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은 젊은 층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혁신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다르죠. 혁신을 빠르게 전파하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벤처캐피털(VC)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요.

“자본시장의 체력이 약해요. 한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해외 VC의 투자로 컸어요. 유니콘을 몇 개 배출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유니콘을 육성하는 데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도 나라의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에요. 저희 투자자 중 하나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전 세계의 유니콘을 자신들이 키운다는 점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에도 그런 투자 집단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승려와 수수께끼’의 한 구절을 인용했는데요.

“사업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펼치는 것이란 구절이었습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가 사업하는 사람의 세 가지 동인을 설명했어요. 그 중 하나가 자신만의 가설을 증명했을 때의 쾌감이에요. 저는 사업 초기에 ‘전단지가 아니라 앱을 통해 배달 음식을 주문할 것’이란 가설을 세웠는데 당시엔 믿는 사람이 없었죠. 초기투자를 해준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도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이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점이 지금도 가장 뿌듯합니다.”

▷‘독서광’으로 유명하십니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으셨나요.

“팩트풀니스, 디커플링을 읽었습니다. 특히 디커플링을 읽으며 혁신은 전문가들이 아니라 고객이 판단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신하게 됐어요. 인공지능, 유전공학, 로봇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혁신도 있어요.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해준다면 그게 바로 혁신이죠. 그런 의미에서 타다도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달 사업 외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먼 미래에 여력이 된다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홀로그램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미국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모두 동물을 박제해 전시해놨어요. 저는 박제 대신 홀로그램으로 동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에요. 가상 동물에 AI를 심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하는 거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받는 수족관이나 동물원도 대체할 수 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예요.”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김봉진 대표는…

"남들과 다른 길 걸어야 성공한다"
B급 문화 내세운 '비주류' 경영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비주류’ 경영자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가고 싶었던 예술중학교, 예술고 대신 수도전기공고를 택했다. 대학은 서울예술대 실내디자인학과를 나왔다.

김 대표는 머리를 밀고 턱수염을 기른 특유의 스타일로 유명하다. ‘비주류로서의 생존 전략’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사실 머리숱이 없는 편이 아닌데 디자이너답게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머리를 밀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 디자인그룹 이모션에서 첫발을 뗐다. 이후 네오위즈, NHN(현 네이버)에서 웹디자이너 경력을 이었다. 지금도 그의 명함에는 ‘경영하는 디자이너’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제 디자인 가구를 파는 사업에 나섰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수억원의 빚을 지고 모아둔 전세 보증금까지 날렸다.

네이버에서 다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김 대표는 2010년 창업에 재도전했다. 전단지를 하나의 앱(응용프로그램)에 모아보자는 게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었다. 길거리와 쓰레기통을 뒤져 반년 만에 5만 개 음식점의 메뉴를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배달의민족 앱이다.

앱을 세상에 알린 건 ‘B급 감성’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등의 위트있는 광고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지금의 ‘배민’ 브랜드를 구축했다

◎약력

▲1976년 전남 완도 출생
▲서울예술대 실내디자인과 졸업
▲네오위즈·NHN 디자이너
▲2010년 배달의민족 창업

송형석/최한종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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