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인 올해 마지막 날까지 노동당 전원회의를 이어가며 '새로운 길' 의지를 드러냈다.
연말을 앞두고 지난 28일부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주재하에 열린 당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31일까지 나흘째 이어졌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노동당의 주요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는 최상위급 의사결정기구인 당 전원회의가 이같이 오래 진행된 경우는 처음이다.
당 대회나 당 대표자회도 이틀 이상 열린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원회의는 사실상 노동당 대회나 대표자회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 전원회의가 수일간 진행된 것은 김일성 시대인 1990년 1월 5∼9일 닷새간 열린 당 제6기 17차 전원회의 이후 29년 만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 첫날부터 사흘간 7시간에 걸쳐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 정형과 국가건설, 경제발전, 무력건설과 관련한 종합적인 보고"를 진행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의정의 결정서 초안과 다음 의정으로 토의하게 될 중요문건에 관한 연구에 들어갔다"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종합 보고 내용과 별도로 중요 의제에 대한 논의가 남아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전원회의에서 매번 마지막 의제로 다루던 '조직문제'(인사)와 관련한 언급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번 전원회의가 내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럴 경우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내내 해왔던 신년사를 이번 전원회의 마지막 날 '결론'으로 갈음할 수도 있다. 형식은 당 간부들 앞에서 연설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 때 '보고' 외에 별도의 '결론'을 육성으로 발표했다. 김 위원장이 즐겨 따라 하는 김일성 주석의 경우도 1957년 신년사를 하지 않았는데 당시 상황은 현재와 닮은 꼴이다.
김 주석은 지배 체제를 위협한 1956년을 위기 속에 넘긴 후 이듬해 1957년 처음으로 신년사를 하지 않았다.
한편 노동신문은 지난 4월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직후 귀환한 국면을 63년 전 김 주석의 귀환과 자립 행보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김 주석은 1987년에도 신년사 대신 1986년 12월 30일 한 최고인민회의 제8기 1차 회의 시정연설로 대체한 전례가 있다. 또한 1966년에는 신년사 없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로 대신하기도 했다.
이례적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원회의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오라고 요구하며 경고와 압박의 수위를 높였으나 결국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해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의 사흘간 보고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매체의 요약 보도에는 이런 인식을 반영한 '새로운 강경한 길'로의 방향 전환이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위대한 우리 인민을 잘살게 하기 위해 우리 당은 또다시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을 결심했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또다시 간고하고도 장구한 투쟁' 대목은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경제·핵 무력 병진 노선'으로의 회귀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 노선에 따라 2017년까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강행하며 자력갱생을 통한 대북제재 극복을 추구했다.
지난해 한반도 정세 변화 속에서 선제적으로 취했던 핵실험 및 ICBM 발사 유예와 핵실험장 폐기 조치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보고에서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정치외교 및 군사적 대응조치들을 준비할 데 대하여" 언급한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럼에도 북한은 '준비'라는 언급을 통해 대미 '말 폭탄'엔 주저하지 않겠지만, 실제 전쟁 위기를 촉발하는 고강도 군사도발에는 정세의 유동성과 대화의 여지를 지켜보며 신중할 것임을 드러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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