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캐디들이 쓰는 은어 중에 ‘피아노맨’이란 게 있다. 과거에는 라운드 내내 동반한 여성 골퍼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성 골퍼를 지칭했지만 최근엔 의미가 달라졌다. 캐디에게 스킨십을 시도하거나 심지어 음담패설을 일삼는 ‘진상 골퍼’를 통칭한다. ‘섰다맨’ ‘거북이맨’을 포함한 ‘3대 진상 골퍼’ 가운데 ‘피아노맨’은 최악 중 최악의 골퍼 유형으로 꼽힌다.
섰다맨은 말 그대로 가만히 선 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골퍼를 말한다. 뭐든 캐디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골퍼다. 한 캐디는 “5m 내외의 퍼팅도 거리를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게 이런 유형”이라고 말했다.
거북이맨은 진행이 느린 골퍼를 일컫는다. 연습 스윙을 세 차례 이상 하거나 자기 차례가 된 뒤에야 부랴부랴 장갑을 끼고 공과 티를 찾는다. 누가 봐도 죽은(아웃오브바운즈) 공을 계속 찾고 있는 유형도 여기에 속한다. 20년 경력의 한 캐디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피아노맨은 확실히 줄었다”면서도 “하지만 나머지는 크게 줄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와이파이’ 유형도 캐디들이 어려워하는 골퍼다. 공이 앞으로 가는 대신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간다. 남은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클럽을 계속 바꿔줘야 하는 게 어려움이다.
‘오늘은 딱피야’라는 말도 캐디들 대화에 자주 등장한다. 딱 정해진 캐디피만 받은 걸 말한다. 버디를 잡을 때 흔히 주는 ‘보너스’는 언감생심. 인천 골프장의 한 캐디는 “거리를 잘못 불러줘 내기에서 졌다며 캐디피를 깎겠다고 우기는 골퍼도 있다”고 귀띔했다.
스크린골프 대중화도 캐디들의 언어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스크린골프에서 ‘멀리건’을 줄 때 누르는 단축키 ‘F12’가 대표적이다. 드라이브 티샷이 오비가 났을 때 “F12 누를까요?”라고 동반자들의 의사를 에둘러 떠보는 식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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