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반란표’ 단속에 들어갔다. 여야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내부에서 공수처법에 대한 공개 반발이 나오면서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이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공조해 공수처법 재수정안을 발의하는 등 ‘분열 작전’에 나서면서 정치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4+1’ 공조 흔들리나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권은희 의원은 29일 4+1 협의체가 합의한 공수처법 단일안에 맞서 재수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4+1안보다 공수처 권한을 제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공수처에 수사권을 부여하되 기소권은 주지 않기로 했다. 당론에 따라 공수처 설치 자체를 반대해온 한국당 의원 11명도 발의에 동참했다.
권 의원의 재수정안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서명자 명단에 박주선·김동철 의원 등 바른미래당 당권파 일부도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활동 중인 김경진·이용주·정인화 의원도 재수정안에 찬성했다. 이들은 4+1 협의체 소속이거나 친여 성향으로 분류돼 당초 4+1 합의안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물들이다. 바른미래당 당권파로 분류되는 주승용 의원도 공수처 법안의 독소 조항을 지적하며 반대 방침을 밝혔다.
권 의원은 “서명하지 않은 분 중에도 4+1안에 반대 의사를 가진 분이 많다”며 “본회의에서 (공수처법을) 무기명 투표에 부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권 의원 측은 법안 통과에 필요한 148표 중 141표가량(한국당 전원 찬성 가정)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 민주당 내 이탈표가 나온다면 재수정안이 본회의를 먼저 통과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재수정안은 4+1 합의안보다 먼저 표결에 부쳐진다. 가결되면 4+1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민주당, 내부 표 단속반면 민주당은 4+1안에 찬성할 인원이 최대 166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4+1 협의체 소속 의원(157명)에 친여 성향 무소속(6명), 바른미래당 박선숙·이상돈 의원(2명), 민중당(1명) 등을 합한 숫자다. 부결되려면 19표의 반란표가 필요하다. 지난 27일 선거법 개정안 표결(찬성 156·반대 10·기권 1) 때는 10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김동철, 김성식, 박주선, 이상돈 의원과 황주홍 평화당 의원,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표결에 불참했다.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은 기권했다.
공수처법 처리에 가장 강력한 캐스팅보터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은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들(9명)이다. 9명 중 확실하게 찬성 의사를 밝힌 사람은 채이배, 김관영 의원 등 2명밖에 없다. 주 의원 등 호남계 중진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고, 선거법 개정안 표결을 거부한 김성식 의원은 본회의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최도자 의원도 반대 의견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가결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표 단속’에 나섰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사실상 강제적 당론”이라고 못 박으면서 “누구도 이탈해선 안 된다”고 했다. 조응천·금태섭 민주당 의원 등이 공수처법의 독소조항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밝혀온 것을 감안한 압박으로 분석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4+1 안과 바른미래당 수정안의 제출 명단을 비교해보면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며 “30일 임시국회에서 공수처 신설을 위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소 정당 압박 나선 한국당한국당은 ‘비례민주당 창당설’을 지렛대로 군소 정당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 과정에서 비례민주당을 세워 군소 정당의 표를 잠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수처법안 처리에 협조해 줘선 안 된다는 논리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공수처법안을 통과시킨 뒤 비례민주당을 만들어 (군소 정당의) 등에 칼을 꽂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