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해외 업체에 특허 이용료(로열티)를 내지 않는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양산하는 5세대(5G) 이동통신칩은 내년에 나올 삼성 스마트폰에, 인공지능(AI) 이미지 센서는 향후 생산될 자동차에 들어간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30년까지 인텔을 제치고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게 삼성전자가 내세운 목표다.
반도체판 ‘리눅스’ 시대 연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0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리스크파이브(RISC-V) 서밋’에 참가해 리스크파이브를 활용한 반도체 생산 계획을 공개했다.
리스크파이브는 2010년 한국인 이윤섭 박사를 포함해 미국 UC버클리 학자 세 명이 주축이 돼 개발한 개방형 반도체 설계자산(IP) 시스템이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 PC 운영체제(OS)인 윈도에 대항해 나온 무료 OS 리눅스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리스크파이브를 ‘반도체판 리눅스’로 부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리스크파이브를 이용해 2세대 5G용 통신칩을 생산했다. 이 칩을 내년에 나올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넣을 계획이다. 리스크파이브의 IP로 개발한 AI 이미지센서는 같은 시기 자동차용 반도체에 장착한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할 때마다 해외 업체에 로열티를 지급했다. 모바일 반도체는 영국 ARM에, PC와 서버용 반도체는 미국 인텔에 돈을 냈다. 두 회사가 시스템 반도체 설계도의 원본이나 마찬가지인 IP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리스크파이브의 무료 반도체 설계도를 쓰면 생산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인텔의 견제 및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와 생산만 전담하는 파운드리 업체, 그리고 모든 부품 업체가 반도체 원천 특허를 보유한 인텔과 ARM이 정하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며 “앞으로 삼성이 무료 설계도인 리스크파이브를 이용하면 대부분 업체가 그에 맞게 생산하게 돼 시스템 반도체 생산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텔과 ARM은 리스크파이브를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퀄컴과 구글, 엔비디아 등이 리스크파이브 회원사로 가입해 있어 저울추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스크파이브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생태계가 더 커질 것이란 얘기다.
‘3대 전략’으로 인텔 넘는다
리스크파이브의 등장으로 삼성전자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후발주자다. 리스크파이브 등이 제공하는 IP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주요 시스템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지금처럼 ARM의 유료 설계도를 활용하겠지만 다른 분야에선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자체 개발과 제휴, 리스크파이브가 삼성전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다.
미래 AI 시대 핵심 반도체로 꼽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는 삼성전자 스스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어 스마트폰의 처리 속도를 빠르게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미국 AMD와 제휴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AMD와 GPU IP를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일반 센서와 통신칩 같은 분야에선 리스크파이브 자산을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리스크파이브 체계가 더욱 정교해지면 AP 같은 고사양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쉬워진다”며 “리스크파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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