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소폭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침체 국면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경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
국내 대표 국책·민간 연구원 원장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와 비슷한 2% 안팎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17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 송년회’에서다.
이날 송년회에는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등 국책·민간 경제 싱크탱크의 수장들이 대거 참석해 내년 국내외 경기를 전망하고 정책 방향 등을 진단했다. 참석자들은 수출 및 투자가 다소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일시 회복됐다가 다시 침체 국면에 들어서는 ‘더블딥(double dip)’ 양상이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잖았다.
미·중 무역분쟁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 경기도 둔화되고 있다. 대내외 경제 하방 위험이 현실화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1%대를 기록하는 등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성장률 올해와 비슷할 것”내년 경제성장률은 올해와 비슷한 1%대 후반에서 2% 초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최 원장은 “내수·수출 회복세가 두드러지지 않아 올해보다 소폭 오른 2.3%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대외 여건이 악화되면 한국 경제가 ‘L자형 침체’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이동근 원장은 “더블딥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변하지 않고 중국과 인도 경기가 둔화되고 있어 한국 수출이 개선될 여지가 낮다”고 평가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생산가능인구가 20만 명 넘게 감소하는 등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 이재영 원장은 “내년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정책 불확실성의 지속’”이라며 “미·중 무역분쟁이 진정 국면으로 돌아설지를 판단하기 어렵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홍콩 사태 등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주요국 정책 방향도 전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에 빠질 수 있다”자본시장에서도 불안한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손 원장은 “올해 재개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자산 거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상당 기간 시장에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 원장은 “내년 한국 주식시장은 완만한 상승을 보이겠지만 한국 성장률의 회복세가 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율에 대해선 “원화가치가 안정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올해보다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 R&D 투자 등 질적 성장해야”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성장 잠재력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은 외형 확대보다 생산성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내년 경기는 상승 가능성보다 하강 위험이 여전히 크다”며 “기업들은 내년 양적 성장보다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성 향상 등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경제 활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며 “민간 자원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재배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