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격 하락폭이 줄어드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국내외 조사기관들이 내년엔 반도체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반도체는 올해 가격이 급락하면서 수출과 설비투자를 비롯한 경기지표를 동시에 끌어내린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로선 내년 초 바닥을 치고 중반께부터 본격적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 회복에 머물지, 2016~2017년 수준의 ‘초호황’이 재현될지에 대해선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가격 낙폭 줄어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11월 수출입물가지수’를 보면 지난달 반도체 D램 수출물가(원화 기준)는 작년 같은 달보다 49.5% 하락했다. D램 수출물가는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내림세(전년 동기 대비 기준)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물가가 떨어진 것은 반도체 거래 가격이 떨어진 영향이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8Gb 기준) 고정거래 가격은 지난해 10월 개당 7.3달러에서 올해 11월 2.8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들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한국 수출지표도 나빠졌다. 올해 1~10월 기준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4% 감소했다.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총수출이 지난해 대비 600억달러가량 줄었는데, 이 가운데 300억달러는 반도체 단가가 떨어진 탓”이라고 말했다.
회복 수준 놓고는 엇갈린 전망올해 고꾸라진 반도체 경기는 내년 들어 서서히 회복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5세대(5G) 이동통신을 도입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가격 하락세도 주춤하다. D램 가격은 7월에 11.2%(전월비 기준) 하락했지만 8~9월에는 변동이 없었고 10월과 지난달에는 9월 대비 3.4% 하락한 수준에 그쳤다. 지난달 낸드플래시 가격(128Gb 기준)은 개당 4.3달러로 전달과 동일했다. 반도체 경기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매출도 오름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의 올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6% 늘었다. 2분기 매출이 6.3% 줄었지만 3분기에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다.
한은은 전날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최근 메모리 단가 변화와 선행지표를 볼 때 글로벌 반도체 경기와 한국 반도체 수출은 내년 중반부터 회복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회복 수준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진단들이 나왔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11일 간담회에서 “낸드플래시와 D램 가격이 내년 상반기 회복세로 접어들고 2021년에는 호황 국면이 돌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신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돼 반도체 경기 회복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에서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는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출·건설 투자가 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그린북에서는 ‘경기 부진’이라는 표현을 8개월 만에 ‘성장제약’으로 바꿔 표현한 데 이어 이달에는 ‘완만한 증가세’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에 대해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그렇다고) 경기가 바닥을 찍고 올라갔다는 평가를 한 건 아니다”며 “저점을 찍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익환/성수영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