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미국은 오일쇼크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경기가 침체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했다. 1979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된 폴 볼커는 물가 잡기에 집중했다. 기준금리를 연 11%에서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 수준인 연 20.5%까지 끌어올리며 인플레이션과 싸웠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제조업과 농업, 부동산 시장 경색을 초래했다. 국민의 반발과 원성이 드높았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시위를 벌였다. 그는 신변 위협 때문에 권총을 차고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도 1982년까지 이 정책을 유지했고, 효과를 확인한 뒤에야 정책 방향을 틀었다. 1980년 14.8%였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2%로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볼커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라고 강하게 압박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다. 그가 물가안정과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덕분에 미국 경제는 장기호황을 맞을 수 있었다. 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 ‘미국 중앙은행 수장이자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통화 긴축은 경제학적으로 ‘케인스학파에 대한 통화주의의 압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통화주의는 인플레이션을 통화 증가의 결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퇴치 이후 통화주의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볼커는 키 201㎝의 거구였다. 이 때문에 ‘Fed 의장의 키와 기준금리는 비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그의 뒤를 이은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180㎝), 벤 버냉키(173㎝), 재닛 옐런(152㎝), 제롬 파월(182㎝)이다. 실제로 이들의 재임기간 평균 기준금리는 키가 클수록 높고 작을수록 낮았다.
어제 92세로 타계한 볼커의 부고를 전하면서 미국 언론은 ‘미국 경제의 구세주’ ‘통화정책계 최초의 록스타’라는 극찬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어서 환경에 따라 늘 변한다. 이제는 저성장·저금리·저물가가 겹쳐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볼커 시절과 달리 지금 필요한 것은 ‘디플레이션 파이터’다. 누가 디플레이션 시대의 폴 볼커 역할을 맡게 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