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로 ‘대여 투쟁력’을 앞세웠던 5선의 심재철 의원이 당선됐다. 당내 ‘비황(非黃·비황교안)’ 표심이 결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의 호흡을 어떻게 맞춰 갈지 주목된다.
심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원내대표·정책위원회 의장 선거 결선 투표에서 총 106표 가운데 가장 많은 52표를 받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각각 27표를 얻은 강석호(3선)·김선동(재선) 후보를 크게 이겼다. 앞서 진행된 1차 투표에서도 39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심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인사말에서 “난국을 잘 헤쳐 나아가기 위한 미래에 대한 고심과 결단들이 이렇게 모였다”며 “겸허하게 당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심 원내대표 임기는 20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5월 29일까지다.
‘대여 투쟁력’을 강조한 심 원내대표가 그동안 원내지도부의 전략 부재에 불만을 가져온 의원들 ‘표심’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심 원내대표는 이날 정견 발표에서도 “저는 싸워봤고 싸울 줄 아는 사람”이라며 “문재인 정권과 맞붙어 처절하게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당의 ‘공격수’를 자처하며 투쟁 선봉에 서왔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한국고용정보원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켰다. 작년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비공개 업무추진비 내역을 확보해 폭로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국회부의장 출신 5선 의원으로 황 대표 독주 체제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 대표는 인선 등을 통해 친정체제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오전까지 이른바 ‘황심’을 업은 재선·초선 조합의 김선동·김종석 조가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투표 결과는 달랐다. 한 한국당 의원은 “5선 중진이 원내대표가 된 만큼 당내 역학 구도에서 황 대표와의 화합보다는 견제가 먼저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쟁을 강조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 등과의 협상에도 여지를 열어놨다. 당 최고 전략가로 꼽히는 김재원 정책위 의장을 파트너로 영입한 심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은 악법이고 절대 반대”라면서도 “민주당이 수정안을 제시하면 살펴본 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 관련 수사를 책임지겠다고 밝힌 것도 마지막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의원들의 표심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심 원내대표는 “의원 단 한 사람도 사법처리되지 않도록 총알받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 정책위 의장도 “패스트트랙 수사는 국회법을 개정해 중단시킬 수 있다”며 문제를 해결할 것을 공약했다.
다만 한국당 쇄신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심 원내대표는 “쇄신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지, 쇄신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며 “선수로, 지역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황 대표에게 직언하겠다”고 했다.
고은이/성상훈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