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터키에 학교 운영 시스템을 통째로 이식한다. ‘터키판 KAIST’에 해당하는 터키과학기술원(TAIST)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계약을 맺은 ‘케냐 KAIST’에 이어 두 번째다.
“KAIST 모델로 핵심인재 키우고 싶다”
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터키 대통령 직속 인재개발위원회 살림 아타이 위원장은 지난달 초 대전 KAIST에서 신성철 총장과 만나 “KAIST를 모델로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 면담엔 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대사와 인재개발위원회 실무자 등이 참석했다.
김원준 KAIST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터키 측이 아시아에서 최고 대학 반열에 오른 KAIST와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요청했다”며 “추후 터키 측과 다시 만나 TAIST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개발원조(ODA) 차원에서 이뤄졌던 ‘케냐 KAIST’보다 한발 더 나아간 협력 모델이 될 것이라고 KAIST 측은 설명했다. 미들이스트공대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 많고 미국, 영국 등 선진국 대학과 협력을 확대하는 등 독자적 경쟁력을 갖춘 터키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해서다.
아타이 위원장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기업 등에 핵심 인력을 공급하는 요람이 된 KAIST의 저력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일본 소니를 제치고 미국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을 키운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중동에도 ‘과학기술 영토 확장’
터키의 이번 제안은 ‘대학 모델 수출’에 나선 KAIST의 전략이 각국에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KAIST는 2010년 아랍에미리트(UAE) 칼리파대에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육 프로그램을 수출했다. 2015년엔 중국 충칭공대에 전기및전자공학부와 전산학부 커리큘럼을 전수했다. 2018년 10월엔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빈살만대와 ‘로봇공학’ 학사과정 설계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대학 수출에 방점을 찍은 계기는 케냐 KAIST다. 케냐 나이로비에 건설 중인 ‘아프리카판 실리콘밸리’ 콘자기술혁신도시의 핵심 기관이다. KAIST는 올초부터 케냐를 상대로 △전기및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농업생명공학, 정보통신공학, 토목공학 등 6개 학위과정 설계 △실험 및 일반 기자재 공급계획 △산학협력을 핵심으로 한 대학 경영계획 등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향후 3년간 총사업비는 1070억원이다. 건물 설계와 감리까지 포함한 첫 대학 모델 ‘통수출’이다.
KAIST는 1971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로부터 600만달러를 지원받아 설립됐다.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미국 측의 보답으로 시작된 이 과학기술 원조 프로젝트는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의 실무작업으로 1969년부터 구체화됐다. 50년 만에 과학기술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바뀐 셈이다.
KAIST 관계자는 “은퇴한 과학기술자나 외국 경험이 필요한 젊은 과학자들의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기업 네트워크 확대, 기자재 활용 등 다방면에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인 KAIST는 올해까지 박사 1만2000여 명을 포함해 총 6만2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국내 과학기술계 인사의 4분의 1이 KAIST 출신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창업한 KAIST 동문기업 1450여 개가 연간 3만2000여 명의 고용 창출과 함께 13조6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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