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논리에 통상제도가 흔들리고 경제 논리가 무력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갈등을 해소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새로운 규범이 필요합니다.”
다케모리 슘페이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한·일 양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같이 제언했다. 지난달 29일 고려대 BK21 플러스와 지속발전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한·일 경제학자 워크숍에서다. 다케모리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국제경제학자다. 이날 한·일 경제학자 워크숍에는 다케모리 교수를 비롯해 야스유키 도도 와세다대 교수, 후루사와 다이지 도쿄대 교수, 이시카와 요타 히쓰토바시대 교수 등 일본 석학이 대거 참석했다.
발표자로 나선 다케모리 교수는 “정치라는 것은 뭔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기 마련”이라며 “힘을 합쳐 성과를 내고 협력의 효능을 증명해나가는 것은 경제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2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종료된다”며 “당분간 통상갈등 중재에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통상 규범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케모리 교수는 이를 위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최근 미국, 유럽과 함께 전자상거래 같은 디지털 통상 규범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며 “한국이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모 대만 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 차이로 촉발된 일본 수출규제 사태는 결국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RCEP뿐 아니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참여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현재 WTO 체제를 정교화하는 데 한·일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야스유키 교수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초창기에는 동일본 업체들만 생산에 차질을 빚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전역으로 악영향이 확산됐다”며 “당시 직접 피해보다 간접 영향이 100배 정도 크다는 분석이 있는 만큼, 일본 수출규제의 피해도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안보상 이유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수출을 규제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WTO 협정상 안보 예외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한·일 양국에 좀 더 명확하고 세세한 ‘게임의 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모두 저출산 및 인구 고령화로 인한 장기 불황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해법을 함께 모색하면서 협력할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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