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다 생활 근거지를 고향도 아닌 곳으로 옮긴 뒤 3년 만에 매출 10억원을 넘보는 수제맥주 업체를 일군 젊은 귀농인이 있다. 배주광 가나다라브루어리 대표(43·사진)가 주인공이다.
그는 KT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마음 한편에 늘 창업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경북 문경으로 귀농해 수제맥주 회사를 창업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아버지의 소개로 문경의 양조사를 만나게 된 것이 계기였다.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를 원료로 한 ‘오미자 맥주’를 알게 됐고 양조사와 대화하면서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해외 수제맥주가 장악하고 있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을 문경 브랜드로 파고들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도 했다. 그의 귀농은 이처럼 농업의 사업적 가능성에서 비롯됐다.
배 대표는 양조사들과 함께 ‘문경새재 페일에일’ ‘오미자 에일’ ‘점촌IPA’ 등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브랜드를 선보였다. 지역 양조사들을 채용해 문경 특산물인 오미자 고유의 맛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주력했다. 최근엔 문경의 또 다른 대표 작물인 사과를 활용해 ‘사과 한잔’이라는 술도 개발했다. 물, 효모만 이용해 사과가 가진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린 탄산 사과주다. 문경 사과는 당도가 높아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된다. 이 제품은 사과즙에 포함된 끈적한 탄수화물 중합체인 펙틴을 제거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제조법 특허까지 출원했다. 배 대표는 “젊은 층의 소비패턴과 취향을 공략하기 위해 맥주 도수는 4.5도 안팎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수제맥주 붐이 일면서 창업 3년째인 올해 매출은 1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의 두 배다. 1만1000㎡ 규모의 공장 신설도 준비 중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가나다라브루어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10월의 ‘A-벤처스’에 뽑혔다. A-벤처스는 농업(agriculture)과 벤처기업(ventures)을 합친 말로, 우수한 농식품 업체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가 대부분 문경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지역 농가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사과 매입량은 지난해 5t에서 올해 30t으로 늘렸다. 문경에서 연간 4만t가량의 사과가 출하되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물량이다. 무엇보다 지역 농산물 판로가 다양해졌다는 점이 농가들엔 희망적이다. 올해처럼 풍년이 들어 사과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가나다라브루어리 같은 지역 농식품 기업이 많아지면 풍년이 들 때마다 많은 세금을 투입해 작물을 수매하는 관행도 바뀔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배 대표는 “한국 농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산업 생태계”라며 “원물 재배와 제조 단계 사이에 중간 공급망이 많아져야 농식품산업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문경 식당, 술집 등을 돌아다니며 직접 거래처를 발굴했다. 초창기엔 이름 없는 맥주라며 거절당하고, 초기 품질 관리에 실패해 쓴맛을 본 적도 있다. 지금은 호텔, 유명 레스토랑, 펍 등 300여 곳에 납품하고 있다. 건물 전체가 한옥 스타일로 이뤄진 가나다라브루어리 양조장은 문경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찾아오는 방문객은 1만2000명가량이다. 양조 과정을 보여주고, 시음도 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이다.
FARM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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