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은 누구이고, 또 충신은 누구일까? 간신과 충신은 스스로 택해서 걸어가는 길일까? 아니면 시대와 상황이 만드는 걸까? 그러나 우리는 특히 조선시대의 수많은 사화(史禍)와 반정(反正)들을 접하면서 간신과 충신은 시대적 상황이라는 역사가 만든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사화와 반정으로 얼룩진 조선사회에는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기 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전부인양 이해했다. 그러나 실록이 완역된 이후 실록에 기초한 올바른 사실들을 접하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잘못 전해진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의 향토 사학자인 류기성 작가는 최근 소설 <臣下>를 통해 그동안 잘못 전해 내려온 한 정치가에 대해 왜곡으로 얼룩진 삶과 그 내용을 재평가 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류 작가는 바로 ‘류자광’이라는 걸출한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간신’의 이미지를 벗기고 또 다른 이미지를 찾는 작업에 작업에 나섰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류자광이 서출 신분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척과 미움을 받던 ‘외로운 시대의 이단아’였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조선 시대에 서출 신분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과거 시험도, 높은 관직도 허용되지 않았고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오직 전쟁과 같이 나라가 위기에 닥쳤을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경우 당상관(정3품)까지만 벼슬이 허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이런 암울한 시대에 살았던 서출 신분인 류자광은 어떻게 정1품인 정승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간신 특유의 간사한 방법으로 왕에 아부와 아첨으로? 아니다. 그 해답이 바로 이 소설 속에 담겨있다.
류지광은 야사(野史)에서는 간신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방송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는 간신의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조선왕조실록 속에서는 간신으로 묘사되기보다는 사림(士林) 세력들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받는 천한 서출 신분의 신하로 묘사가 되고 있어 상당한 차이를 느낀다.
실록에는 천한 신분이었던 류자광은 왕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서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사림 세력이 질시하여 높은 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신분 차별의 높은 벽을 통렬하게 인식했던 비운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류자광은 간신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리 금전적인 이익이나 뇌물 때문에 대간들로부터 비난이나 탄핵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랫동안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많은 재물이 오히려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줄 것을 미리 예지하여 의식적으로 재물을 멀리하고 오히려 자신의 재물을 주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기록들이 보인다.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한명회나 김종직도 류자광의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벼락 출세에 대해 반대했을 뿐, 류자광을 공신으로 인정하고 그의 청렴함과 뛰어난 능력은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한 신분이라는 점을 빼고는 그의 인품이나 능력, 청렴성 등에서 지적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독자들이 류자광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류자광이라는 한 외로운 시대의 이단아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 그는 조선의 신분사회에서는 출세를 할 수 없는 천한 서출 신분의 이단아였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인 류규마저도 류자광의 천재적인 능력에 불안을 느껴 글공부보다는 무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산에서 가야 역사 연구에 골몰하고있는 올해 64세의 류기성 작가는 늦게 문학계에 진출해 <臣下>에 앞서 <가야의 비밀>, <아~! 진주성>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이고 있다.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