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 21일 일반 투자자보다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을 대폭 완화했지만 시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문투자자 등록을 받는 증권사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모호해 눈치만 보고 있다. 투자자들도 투자 대상 상품 기준이 까다로워 문의만 쏟아낼 뿐 선뜻 신청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문투자자 요건 낮췄지만…
2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전문투자자 요건 완화를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자 증권사 창구에는 자산가들의 신청 문의가 늘고 있다. 한 은행지주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지난 4년간 전문투자자에 관한 문의를 겨우 두 건 받아 봤는데 이달 들어서만 열 건 넘게 들어왔다”며 “주로 금융자산 1억~3억원을 보유한 고객들이 새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를 통해 전문투자자로 등록하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약을 덜 받으면서 사모펀드나 크라우드펀딩, 코넥스시장 등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최근 투자 좀 한다는 ‘큰손’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차액결제거래(CFD)도 할 수 있게 돼 자산가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종전에는 전문투자자가 되려면 금융투자상품 잔액만 5억원을 넘어야 하는 등 조건이 엄격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소득 1억원(부부합산 1억5000만원) 또는 순자산 5억원 이상(거주주택 제외), 금융투자상품 5000만원만 채워도 전문투자자가 될 수 있다.
“연내 전문투자자 등록 어렵다”
하지만 정작 전문투자자 심사와 등록을 맡은 증권사들은 금융당국 눈치만 보고 있다. 창구에선 아예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전문투자자 신청을 해도 올해 안엔 허가가 나기 어렵다”고 안내하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전문투자자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전산 시스템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접수를 미루고 있다. 한 증권사의 해외파생상품팀 팀장은 “관련법이 바뀌었어도 자산, 금융 관련 전문성 등 기준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이 모호해 섣불리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당초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고위험 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수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등 사모펀드 영역에서 잇따라 사고가 터졌고, CFD에 대해서도 ‘탈세 수단’ 등 논란이 일자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후속대책 마련에 급급한 분위기다.
지난 20일 금융위는 바뀐 자본시장법 시행령 발효를 하루 앞두고 전문투자자로 인정할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 기준을 까다롭게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초 4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대상자 수는 1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CFD 규제 카드 만지작
감독당국은 특히 최근 이슈로 떠오른 CFD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업계에서도 “전문투자자에 관해 문의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CFD 거래를 이용하는 게 목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CFD는 주식 등 기초자산을 실제 보유하지 않고 진입가격과 청산가격의 차액(매매차익)만 현금으로 결제하는 신종 장외파생상품이다. 최소 10%의 증거금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낼 수 있어 10배까지 레버리지 활용이 가능하다. 다만 고위험 거래 방식이라 전문투자자만 이용할 수 있다.
▶본지 11월 19일자 A21면 참조
CFD는 주식을 보유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보유지분 5% 공시의무, 신용융자 잔액 등에서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 금융당국은 일부 슈퍼 개미들이 CFD를 통해 다량의 소형주 매수는 물론 공매도까지 하고 있어 시장 교란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CFD 등 장외파생거래를 통해 주식을 실질적으로 보유할 경우에도 대량 보유 및 공매도 보고 의무가 적용될 수 있도록 금융위와 협의해 관련 법령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CFD가 어떤 상품인지 파악하고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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