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06년 취임 때 ‘전후(戰後) 최연소 총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에 취했다가 1년 만에 단명하고 말았다. 가장 큰 실책은 심복들을 대거 등용해 ‘도모다치(친구) 내각’을 꾸린 것이었다. 측근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요직에 앉힌 결과 추문과 망언, 정치자금 등의 스캔들에 시달렸다.
그의 ‘가신 그룹’ 핵심멤버인 사다 겐이치로 행정개혁상은 사무실 재정운영 문제로 물러났고, 규마 후미오 방위상은 망언 때문에 사임했다.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은 각종 비리에 휘말려 자살했다. 아베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머뭇거리며 책임을 피하려 했다. 그 바람에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37석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몰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잘못된 결정과 정책 등을 노트에 기록했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며 가상 대책까지 세웠다. 이렇게 자신을 가다듬고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긴 덕분에 2012년 말 재집권했다. 이후 그는 경쟁 상대였던 이시바 시게루를 ‘넘버 2’인 당 간사장으로 중용했다. 각료들이 논란을 일으킬 때는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2014년에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에서 압승하며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헌정 사상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1기 집권 때 단명한 경험을 ‘실패 노트’에 적고 반성한 게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인사를 정(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과 ‘정책이 좋다고 해도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실행할 수 없고 국민의 지지까지 잃게 된다’는 구절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는 “디즈니랜드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네 차례 이상 사업에 실패한 뒤 ‘디즈니 왕국’을 세웠다”며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자신감을 보였다.
‘실패학’ 창시자인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실패를 신뢰의 자산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정책이 잘못됐으면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하고, 경제 청사진에 오류가 있으면 즉각 수정하는 게 실패학의 요체다. 미국이 미시간주 앤아버에 ‘실패 박물관’을 세우고,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세계적인 실패 공유 콘퍼런스 ‘페일콘(FailCon)’을 개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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