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1979년 말 서울 소공동에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를 열었다. 국내에서 가장 ‘현대화된’ 백화점이었다. 개장 첫날 30만 명이 넘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입장객 수를 조절하기 위해 셔터를 하루에도 여러 번 닫았다. 하이라이트는 백화점 1층 매장이었다. 금강 구두, 루이까또즈 핸드백, 귀금속 매장이 자리잡았다. 당시 소비자들이 ‘선망했던’ 상품 목록이다. 이후 백화점 1층은 변화를 거듭했다.
세 번의 변화
1980년대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백화점 전성기였다. “롯데백화점에는 돌을 갖다 놔도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구두, 핸드백, 귀금속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진 소비자들의 첫 번째 구매 리스트였다. 1990년대 중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1995년 신세계 본점에 루이비통 매장이 들어선 뒤 명품이 밀고 들어왔다. 구두, 핸드백 등 ‘잡화’ 매장은 서서히 2층으로 밀렸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며 백화점 1층 매장은 또 한 번 급변했다. 수입 화장품들이 1층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마트는 실속형, 백화점은 고급형으로 방향을 잡아간 영향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백화점 1층 매장은 명품과 에스티로더, 랑콤, 샤넬 등 수입 화장품 매장이 차지하고 있다. 백화점 수익에도 좋았다. 수입 화장품은 매장을 좁게 쓰고 매출을 많이 올려줬다. 소비자들의 ‘수요’와 백화점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에 수입 화장품이 있었다. 2010년까지 백화점은 명품, 해외 화장품 등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후 최근까지는 ‘명품 확장 경쟁의 시기’로 부를 만하다. 백화점들은 2010년 이후 경쟁하듯 명품 매장을 늘렸다.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은 고급 백화점의 상징이 됐다.
리빙 브랜드를 1층에 넣는 모험
백화점은 최근 또 다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생존’의 위협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온라인, 면세점, 해외직구 등에 손님을 빼앗긴 백화점들은 몇 해 전부터 매장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매출도 감소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선점하지 못한 롯데백화점의 고민은 더 크다.
오는 15일 창립 40년을 맞는 롯데백화점은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하기로 했다. 롯데백화점은 천편일률적이었던 1층을 각 지역 특성에 맞는 ‘테마형 전문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15일 롯데백화점 강남점 1~2층에 들어서는 ‘더콘란샵’이 테마형 전문관이다. 더콘란샵은 가구, 조명,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하는 해외 리빙 편집숍이다. 가격대가 매우 높은 편이다. 노르웨이의 칼 한센, 영국의 톰 딕슨 등 세계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이 많다. 리빙 상품 매출이 최근 큰 폭으로 늘자 롯데는 과감히 리빙 편집숍에 ‘명당자리’를 내줬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말 문을 연 안산점 신관 1층에 무인양품을 넣는 등 리빙 분야를 키우고 있다.
테마형 전문관의 또 다른 키워드는 ‘체험’이다. 백화점이 최우선시하는 ‘평당 매출 극대화’를 포기한 대신, ‘집객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6월 김포공항점이 시작한 ‘쥬라기 월드 특별전’은 그 전형이다. 백화점 1층에 공룡 모형을 전시했다. 쥬라기 월드 특별전 덕분에 김포공항점은 이 지역 ‘명소’가 됐다.
본점·잠실점 등 명품 백화점으로
롯데백화점이 1층 공간을 바꾸는 또 다른 포인트는 해외 명품이다. 소비 양극화로 명품 등 고가 상품은 백화점에서, 중저가 상품은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본점을 ‘한국의 대표 명품 백화점’으로 바꾸고 있다. 1층에 있는 해외 화장품 브랜드를 다른 층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명품 매장을 넣기로 했다.
롯데는 신세계, 현대 등 경쟁 백화점에 비해 명품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국 주요 상권 곳곳에 백화점을 짓는 ‘다점포’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최근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고 롯데는 판단했다. 롯데는 우선 명품 확대가 가능한 본점, 잠실점, 부산본점 등 대형 점포 위주로 공사를 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화장품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명품 매장을 두르는 식이었다면, 앞으로는 매장 한가운데에도 명품 매장을 전진 배치한다. 지방의 소형 백화점에는 컨템포러리(준명품)를 넣어 명품을 대체한다. ‘롯데백화점은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한다는 것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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