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이 세계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디지털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를 내놓을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디지털 화폐’를 중앙은행이 선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사업은 엄격히 금지해왔다. 국가가 아닌 제3의 다른 누군가가 화폐를 찍어내는 것을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랬던 중국이 블록체인 분야를 선도하고 국제금융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블록체인 핵심 기술 확보하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재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황치판(黃奇帆)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은 지난달 28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1회 와이탄 금융서밋’에 참석해 “인민은행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블록체인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인민은행이 올해 안에 디지털 화폐를 출시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국유 은행과 알리바바, 텐센트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유통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화폐란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지폐나 동전과 달리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를 가리킨다. 황 부이사장은 인민은행이 내놓을 디지털 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두고는 있지만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화폐와는 다른 전자화폐라고 선을 그었다. 비트코인 등은 가격 변동이 심하지만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그 자체가 법정 화폐라는 설명이다.
인민은행은 시중에 유통되는 총 화폐량과 디지털 공간에서 결제되는 화폐량을 분석해 디지털 화폐를 별도 공급하고, 디지털 공간에선 디지털 화폐가 현재의 화폐를 대체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시중은행에 공급하면 시중은행은 개인과 기업 등에 1 대 1 비율로 위안화를 디지털 화폐로 바꿔준다. 소비자들은 이를 온라인이나 모바일 결제 때 사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페이스북 “리브라 막으면 중국에 뒤처져”
중국은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가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 영향력을 흔들고 위안화의 국제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이 편리한 디지털 화폐를 외국인이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위안화 위상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다. 국제 금융계에선 중국 움직임에 대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가상화폐 분야에서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페이스북에 규제를 가하고 있어, 중국이 시장을 선점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의회와 규제당국은 내년 가상화폐 ‘리브라’ 출시 계획을 발표한 페이스북에 대해 기존 통화체제를 흔들 우려가 있고 테러·마약자금의 유통경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리브라 도입을 늦추겠다”고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디지털 화폐 출시를 예고한 상황에서 리브라가 끝내 출시되지 못하면 미국은 세계 금융 선도국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측은 “한국은 지급 결제 인프라가 뛰어나고 다양한 지급 수단이 발달해 디지털 화폐를 따로 발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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