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 언제까지 평당 매출이나 따지고 있을 겁니까?”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지난 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20 유통 대전망’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 주요 유통사 관계자 550여 명이 참석했다. 업계의 절박함을 보여주듯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한 참석자는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급격히 바뀌고 있어 어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아마존 알리바바 쿠팡 등 e커머스 기업이 유통산업의 판을 뒤집어 놓자 기존 유통회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들은 발표자의 발언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한정은 맥킨지 한국사무소 부파트너는 ‘극강의 편의’를 강조했다. 그는 아마존이 최근 선보인 무인편의점 ‘아마존고’를 예로 들며 “소비자는 줄을 서는 등 아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보 AT커니 파트너는 알고리즘이 못하는 분야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심 파트너는 “온라인에선 알고리즘이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와 상품을 제안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품과 브랜드도 보길 원한다”며 “오프라인 매장은 알고리즘이 주지 못하는 무작위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혁 닐슨코리아 전무는 ‘큐레이션’(상품 추천)에 방점을 찍었다. “사람들이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하는 유아용품 등은 구매 이력을 파악한 뒤 같은 상품을 추천해주고, 신선식품과 화장품은 구매 후기나 동영상 등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 내용의 핵심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나온 얘기가 새롭지는 않았다. 상당수 기업이 이미 시도하는 것들이다.
기업의 ‘생존 본능’은 혁신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지난 2분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낸 이마트는 4900원짜리 칠레 와인을 선보여 ‘대박’을 냈다. 롯데의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 ‘롯데ON’은 초저가 행사를 통해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45% 늘렸다. “요즘 마트에 가면 살 게 많다”는 말도 들린다.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노력이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는 말이 있다. e커머스 기업에 고객을 빼앗겼던 유통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새로운 상품, 가격,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혁신과 변화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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