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게 ‘김지영’서 주인공 김지영 役
|육아? “지영이는 상처 받은 사람”
|기도하는 심정으로 책 단락 읽어
|세상 편견과 맞서 싸운 지난 15년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非보편적 캐릭터로
[김영재 기자] “진짜 용기 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인증샷만 올려도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는 소설이 있다. 그 책의 이름은 ‘82년생 김지영’이다. 그렇기에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 타이틀 롤로 참여한 배우 정유미(36)는 요즘은 보기 드문 ‘용기 있는 배우’가 아닐까. 하지만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원론만을 남긴 채 마이크를 탁자에 내려놨다. 지나친 해석을 경계한 것.
같은 날 감독은 “말을 잊어버린 주인공이 결국 그 말을 되찾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은 비유적 표현으로, 김지영(정유미)이 더는 침묵하지 않는 순간이 본작의 하이라이트다. 책도 영화도 사회가 쉬쉬하던 ‘여성 혐오’의 공론화에 총대를 멨다.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유미는 원작과 페미니즘의 연관에 관해 “일부가 만들어 낸 브랜딩”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물론 다양한 관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선 그는, 또한 “편견 없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싶다”고 바랐다.
관객이 용기로 그 편견을 부수기를 희망한 것이다. ‘진짜’ 용기 말이다.
―출연 이유를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부산행’ ‘염력’ ‘라이브’를 하고 난 다음이었어요.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는데, 여러 작품 중 유독 저를 움직인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에 늘 끌려요. 그리고 원작에 대한 논란을 걱정하기보다 이야기를 잘 만들어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힘이 또 있으니까요. 희망적 결말에도 끌렸죠. 숨통이 트이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빙의 신이 인상적이었어요. 원작을 그대로 옮겼더군요.
“저희끼린 빙의라고 안 불렀어요. 가슴에 쌓인 어떤 시선의 발현이라 생각했죠. 엄마에게 ‘미숙아’ 하는 신의 경우는 예수정(김지영 외할머니 역) 선배님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선생님께서 해당 대사를 직접 녹음해 주셨거든요. 그 녹음 듣고 많이 울었어요.”
―왜 지영은 해리성 장애를 갖게 됐을까요? ‘육아 문제’가 절대적이라 생각해요.
“육아 문제도 있지만, 한 사람의 문제이기도 해요. 지영이는 상처 받은 사람이에요. 상처 받았다는 점만 놓고 보면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요. 그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돌아보고 지금이 어떤 상태인가를 아는 거겠죠. 그래야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고요.”
―원작은 얼마나 참고했습니까?
“감정을 더 느끼고 싶으면 책에서 해당 단락을 찾았어요. 어쨌든 심리 묘사는 책이 더 촘촘하니까요. 그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찬찬히 읽다 보면 마음이 스르륵 오더라고요. 감독님께도 많이 의지했어요. 육아와 일을 진짜 병행하시는 분이라 자연히 제일 믿고 의지하는 분이 됐죠. 옷 이유식 자국부터 유모차를 한 발로 미는 것까지 다 감독님 디테일이에요. 유모차 브레이크를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발을 대면 딱 멈춰요.(웃음)”
“나 15년 됐다고요!” 그 장난스러운 외침에 별안간 웃음통이 터졌다. 단편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부터 셈하면 어느덧 중견의 반열에 오른 정유미. 이 가운데 그는 “편견과 늘 싸웠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저 작품(KBS2 ‘직장의 신’)이 좋았고 또 존경하는 선배와 같이 출연하고 싶었을 뿐인데, 돌아온 대답은 “왜 주인공 하다 그걸 하게 됐어?”였다는 것. “어이가 없었다”며 미간을 찌푸리는 그의 솔직함에 현장은 또 웃음바다가 됐다.
좋은 작품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배우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세상이 건넨 응답은 “로코 이미지로 쭉 가지 임산부는 왜 해?” 따위였다.
―터닝 포인트라 생각하는 작품이 있나요? 세 가지만요.
“‘사랑니’ ‘케세라세라’ ‘로맨스가 필요해’요. ‘사랑니’는 제 첫 상업작이라 너무 특별한 영화고요, ‘케세라세라’는 제 쓸데없는 편견을 깨부수는 데 용기를 준 작품이에요.”
―그 편견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제가 영화로 데뷔했잖아요. 사실 ‘케세라세라’ 출연 제안에 ‘내가 드라마를 왜 해?’라는 생각까지 했었어요.(웃음) 물론 작업 후에는 제가 못났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 그런 생각을 한 것에 많이 반성했고요. 덕분에 어떤 작품이든 편견을 거두고 보게 됐죠. ‘로맨스가 필요해’는 얘기는 재밌으나 방송사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때라며 주변에서 우려한 작품이었어요. 근데 제 입장은 달랐어요. ‘얘기가 재밌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웃음) ‘케세라세라’ 때 얻은 교훈 덕이었죠. 마침 큰 상업 영화도 제안이 들어와서 그때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결국 둘 다 고사했는데, 다행히 ‘로필’ 쪽에서 또 제의를 주셔서 재밌게 찍었던 기억이 나요. 만약 상업적인 면만 보고 작품을 골랐다면, 그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았겠지만, 아마 후회했을 거예요. 그게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싶어요.”
―아까 ‘염력’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맞아. 염력에서 되게 매력적인 역할로 나왔지’란 생각에요. ‘염력’ 출연 배경도 궁금한데요.
“연상호 감독님만 보고.(웃음) ‘뭐든 주세요’ 이랬어요. 근데 그렇게 긴 걸 주실 줄이야. 잠깐 나오는 거 하나만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말이죠. ‘염력’도 참 재밌게 찍은 작품 중 하나예요. 차기작은 이경미 감독님 작품인 ‘보건교사 안은영’이에요. 아마 이번 영화랑은 결이 좀 다를 듯해요. (기자-혹시 그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 씨가 맡은 역처럼 광기 어린 캐릭터일까요?) 보편적 캐릭터는 아닐 겁니다.(웃음)”
(사진제공: 매니지먼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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