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스가 많이 나는 홀입니다. 왼쪽이 좋아요.”
샷을 하기 전 주로 캐디가 해주는 말이다. 이 말을 골프용 거리 측정기가 해줄 날이 머지않았다. 토종 거리 측정기 브랜드 ‘보이스캐디’로 유명한 브이씨(VC)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제품을 내놓는다.
김준오 브이씨 대표는 3일 “빅데이터와 위성항법장치(GPS)를 결합하면 골퍼에게 단순 거리를 넘어 코스 공략법 같은 인사이트(통찰력)도 제공할 수 있다”며 “내년 인공지능(AI)에 준하는 기능을 갖춘 측정기로 이를 실현해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브이씨는 김 대표가 2005년 창업한 유컴테크놀러지가 전신이다. 서울대 공대(전기공학)를 나와 미국 UCLA에서 무선통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당초 전자태그(RFID)에 특화된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으로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2011년 골프용품 업체로 변신한 뒤 지난 8월 브이씨로 문패를 고쳐 달았다. 김 대표는 “브이씨는 밸류 크리에이터(value creator)의 영문 약자”라며 “골퍼가 골프를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가치(기술)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브이씨는 골프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래 고공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200억원대였던 매출이 올해 300억원대를 훌쩍 넘어설 전망. 내년 목표가 500억원대 진입이다.
초창기에는 모자에 꽂고 다니는 음성형 거리 측정기가 효자 노릇을 했다. 쓰기 편하면서 가격은 3분의 1에 불과한 ‘가성비’가 먹혔다. 그는 “당시 30만원대였던 경쟁사 제품이 연간 3000여 개 팔렸는데, 보이스캐디는 10개월 만에 10만 대가 팔렸다”고 돌아봤다. “경쟁사 제품은 버튼을 너덧 번 조작해야 했지만 보이스캐디는 골프장 및 홀 정보를 담고 있어 버튼 한두 번이면 끝이었어요.”
2014년 비슷한 제품들이 경쟁적으로 나오며 추격해왔다. 브이씨는 ‘레이저’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2016년엔 세계 최초로 GPS 기능까지 추가했다. 그는 “깃대가 얇고 가늘다 보니 그린 뒤에 있는 나무 같은 엉뚱한 목표물을 잡는 게 레이저의 약점”이라며 “GPS가 결합하면 이런 오류를 잘못된 정보로 간주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안개나 손떨림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측정 완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세계 1위 측정기 업체 부시넬의 안방인 미국 시장 공략도 순항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을 포함한 해외 판매 대수는 3만 대로 국내(13만 대)의 약 23%에 달한다. 김 대표는 “3년 전 그린 경사 인지 기능을 측정기에 처음 넣었을 때 고객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며 “고객이 찾을 수밖에 없는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측정기의 개념을 진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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