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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졸속 脫원전, 더 끌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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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현 정부가 내세우는 비전 중 하나다. 이 비전의 실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조금씩 좁히며 진화하던 기존 정책 기조를 손바닥 뒤집듯 180도 바꾸면서 시작됐다.

탈(脫)원전이 대표적이다. 탈원전은 좌파 진영의 뿌리 깊은 반핵(反核) 정서, ‘원전 멸종론’ 같은 소수 의견, 독일과 일부 유럽 국가들의 예외적 사례에 기초해 추진된 졸속 정책의 대표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급조된 탈원전의 근거마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재 탈원전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데는 한국을 포함해 독일, 스위스, 벨기에 4개국뿐이다. 일본, 대만 등은 탈원전을 포기했다. 아랍에미리트, 체코, 폴란드 등 16개국은 신규 원전을 건설 중이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은 올초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 대책으로 원자력 발전의 역할을 오히려 강조했다. 아무리 봐도 원전 멸종론은 지나쳐 보인다.

탈원전 국가들 모두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미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 간 연정이라는 정치적 거래의 산물로 시작된 탈원전을 가장 모범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독일은 2022년 ‘원전 제로(0)’ 목표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비중 세계 1위 국가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 전기 가격 급등이란 암초를 만나 뒤뚱거리는 모습이다. 독일은 현재 전력의 약 3분의 1을 석탄발전으로 생산하고 있다. 생산이 들쭉날쭉한 간헐성 전원인 재생에너지가 24시간 중단 없이 생산하는 기저 전원인 원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다. 석탄발전 증가로 2020년 온실가스 배출 40% 감축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런 추세라면 32% 감축에 머물 전망이다. 기후변화 이슈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난감한 노릇일 것이다.

독일에서는 전기 가격에 대한 불만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태양광, 풍력 등에 지급하는 보조금 누계가 2015년 약 195조원에 달했고, 2025년에는 67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당연히 가정에 부과되는 재생에너지 부과금은 처음 시행된 2000년에 킬로와트시(kWh)당 0.19센트였는데 2017년엔 6.88센트로 35배 인상됐다. 그 결과 전기요금은 지난 15년간 두 배 이상 올랐다. 이에 따라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유럽 평균보다 50% 이상 높고, 프랑스보다 2배, 한국보다 2.8배 비싸다. 에너지전환 정책 도입 당시 “전기요금은 가구당 아이스크림 한 스푼 값인 1유로 정도 오를 것”이라던 녹색당 출신 장관의 장담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벨기에는 2025년까지 탈원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올초 7개 원자로 중 6개를 유지·보수 목적으로 정지시킨 후 블랙아웃 직전까지 내몰리고 난 다음, 샤를 미셸 총리는 “급격하고 즉흥적인 탈원전은 벨기에의 정책이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다. 탈원전의 원조 격이고 수력발전 비중이 40%에 이를 정도로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스웨덴도 ‘2010년까지 원전 폐쇄’ 계획을 일찌감치 뒤집고, 현재 약 3분의 1의 전기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원전 비중 대폭 감소를 목표로 하던 프랑스도 독일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비난하며 주춤하는 모습이다. 스페인의 사회주의 정부도 최근 수명이 끝난 테레사 리베라 원전의 폐쇄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한국도 탈원전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유럽 국가에 비해 태양이나 바람의 질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력망이 서로 연결돼 있지도 않아 재생에너지 보급에 불리하다. 에너지 안보도 취약한 현실을 감안하면 탈원전 정책 철회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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