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실패를 겪은 뒤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마음의 상태나 능력을 일컫는다. 최근 농식품업계에 회복탄력성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기업인이 있다. 하상용 ‘광주로컬푸드 빅마트’ 대표가 주인공이다. 연 매출 2000억원 이상을 올리며 광주광역시 유통시장의 맹주로 활약하다 파산한 그는 월세 보증금 1000만원도 없어 다섯 명의 가족이 지인의 주유소 2층에 한동안 기거했다. 그곳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부활해 지금은 ‘재도전 전도사’로 더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하 대표는 1995년 광주에서 빅마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이 지역 첫 대형마트를 출점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광주·전남으로 시장 영역을 넓히며 2006년 매장 수를 17개까지 늘렸다. 2000년대 중반 연 매출 2000억원을 넘긴 빅마트 직원 수는 3000여 명에 달했다. 매출 기준 전국 대형마트 순위에서 7위까지 올랐다.
하 대표는 “빅마트를 세우기 전 유통업체와 창업투자회사에서 일한 덕분에 유통업 트렌드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며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도 미국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유통업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빅마트 전략은 간단했다. 서울 대형마트의 최저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목표 이익률을 1%에 맞췄다. 매장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매장 인테리어를 간소화했고, 직원 유니폼 제작·세탁비용을 줄이기 위해 매장 직원들은 청바지에 빨간 조끼 하나만 상의 위에 걸치도록 했다. 매장 팀장들에게 상품 선택권한을 줘 지역 소비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발 빠르게 들여놓을 수 있도록 했다.
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그는 2000년대 중반 위기를 맞았다. 다른 대형마트들의 광주·전남 지역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 매장을 무리하게 늘린 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빅마트는 2007년 대부분의 매장을 롯데쇼핑에 매각했다. 알짜 매장을 모두 넘기고 3개 매장만 남은 빅마트는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2년 파산 결정이 내려졌다. 하 대표는 실패 원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무리한 점포 확장과 더불어 오너 경영자인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할 시스템이 회사 안에 없었던 것을 지목했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가족 모두는 말 그대로 길가에 나앉는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빅마트에 기름을 공급하던 주유소 사장이 주유소 2층 사무실을 내준 덕분에 가족들과 함께 기거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하 대표의 재기를 위한 도전이 시작됐다. 부인 정지영 광주로컬푸드빅마트 이사와 함께 ‘전라도식 프리미엄 김치’를 만들어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SNS로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하 대표는 “2013년 6월에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처음 김치 60박스를 택배로 보냈는데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김치 사업을 할 때는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일했다”고 말했다. 김치 사업으로 재도전의 발판을 마련한 하 대표는 2013년 말 광주 봉선동에 친환경 농식품을 판매하는 오가닉빅마트를 개업하면서 다시 오프라인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난 8월 광주 학동에 지역 농산물을 취급하는 광주로컬푸드빅마트 매장 문도 열었다. 그는 “농민들이 직접 자신의 농산물을 매장에 진열하도록 해 물류비용 ‘제로(0)’를 실험하고 있다”며 “그런 만큼 더 신선한 농산물을 더 싼 값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하 대표는 실패에 이은 재도전 경험을 예비 창업자에게 전파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사단법인 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 이사장을 맡아 청년과 재기를 노리는 창업자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법을 컨설팅하고 있다. 최근엔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이란 책도 냈다. 그는 “철저하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창업에 나서지 않도록 하는 것도 창업을 돕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주=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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