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성북동 브라질 대사관저에서 만난 루이스 엔히키 소브레이라 로페스 주한 브라질대사의 첫인상은 ‘옆집 아저씨’였다. 풍채 좋은 중년이었다. 예정보다 20분 일찍 도착한 기자들을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줬다.
‘맛있는 만남’은 보통 식당에서 이뤄지는데 대사관저로 정한 것은 서울에 있는 브라질 음식점의 솜씨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런 거냐고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로페스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서울에도 맛있는 브라질 식당이 많아요. 그런데 대사가 한 군데를 지정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보다도 시간 여유를 좀 갖고 브라질 현지식을 직접 대접해보고 싶었어요.”
로페스 대사는 인터뷰 중 “안타깝다”는 말을 두어 차례 했다. 그는 한국에서 양질의 브라질산 농축산품을 잘 구할 수 없는 상황을 하루빨리 바꾸고 싶다고 했다. 한국과 브라질은 아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고 있다. 로페스 대사는 “한국에는 FTA를 맺은 칠레에서 포도주가 많이 수입되는 것으로 아는데 브라질산 백포도주가 더 맛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유통되는 수입 닭고기의 82%가 브라질산인데, 교류가 확대되면 이 같은 농축산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세 때 시작해 40년 된 외교관로페스 대사는 응접실로 안내했다. 식전주로 브라질의 국민 칵테일 ‘카이피리냐’를 권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증류주 ‘카샤사’에 과일과 라임, 설탕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 그는 “한국의 소주와 비슷하다. 제조연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찹쌀도넛을 닮은 ‘팡지케이주’라고 불리는 간식도 같이 나왔다.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로 ‘치즈빵’을 뜻한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치즈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과 외교관이 된 사연을 물었다. 브라질 동남부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인 그는 10세 때 수도 브라질리아로 이사갔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부터 외교 정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비교적 이른 나이인 19세에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21세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브라질 외교부에 첫발을 들인 뒤 줄곧 유럽과 북미, 남미 지역에서 외교관을 지냈다. 한국은 그가 공직생활 40년 만에 처음 부임해 인연을 맺게 된 아시아 국가다.
‘집안이 브라질의 명문가이거나 외교관 가문인가’라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어요. 아버지는 직업군인, 어머니는 교사였죠.” 로페스 대사는 “큰아들이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로페스 대사에게는 세 자녀가 있는데 그중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외교관의 삶을 살고 있다. 이란 테헤란에 있는 브라질 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수교 60주년…다양한 행사 주관그는 “올해는 특히 한국과 브라질이 수교를 맺은 지 60년을 맞은 해”라며 “이런 때 대사로 부임하게 돼 더욱 영광”이라고 했다. 한국과 브라질은 1959년 수교했다. 주한 브라질대사관은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각종 문화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6일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연주 듀오인 아사드 형제를 초청해 기타 연주회를 열었다. 19일에는 서울 명동에서 브라질 영화제가 열린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자 전채 요리로 무화과를 곁들인 가든샐러드가 나왔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한국 음식이 로페스 대사의 입맛에 잘 맞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브라질에도 매운 음식이 많다”고 말했다. 브라질 북동부와 로페스 대사의 고향인 리우데자네이루가 속한 동남부 지역 음식이 매운 편이어서 한국 음식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브라질과 한국이 모두 쌀밥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도 서울 생활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한국 음식 중에는 매운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음식 재료는 브라질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안타깝지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과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 간 무역협정(TA) 협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브라질산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5개국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 협의체다. 한국은 이 가운데 회원국 자격이 정지된 베네수엘라를 뺀 4개국과 지난해 5월부터 TA 협상을 하고 있다. 로페스 대사는 “이달 초 양측 협상단이 부산에서 4차 협상을 했다”며 “회원국들이 강한 체결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은 한국 기업 투자 기다려이윽고 메인 요리인 ‘버버’가 백포도주와 함께 나왔다. 카사바(고구마처럼 생긴 구황식물의 일종) 가루로 만든 소스와 새우를 넣어 만든 일종의 덮밥이다. 음식 맛을 보면서 브라질에서 일고 있는 개혁 바람에 대해 물어봤다. 브라질은 올 1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민영화·세제 감면 등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다. 로페스 대사는 “앞으로 개혁이 진행될수록 한국 기업의 브라질 진출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특히 인프라 개발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 들어 철도 공항 항만 등 그동안 정부가 대부분 운영하던 여러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민영화를 시행하고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개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로페스 대사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브라질 역내 투자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 기업들도 더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브라질 정부의 과도한 개혁·개발 정책이 아마존 열대우림을 망가뜨린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오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여름 아마존 열대우림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으로 이 문제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당시 브라질 정부가 화재 진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로페스 대사는 “화재는 예년과 비교해 더 큰 것은 아니며 브라질 정부도 열대우림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일부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잘 지내”디저트로 망고 시럽을 곁들인 초콜릿 무스가 나왔다. 이번에는 로페스 대사가 말을 먼저 꺼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고 서로 닮은 점이 많은데 계속 이견을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고 했다. 이어 “우리도 옆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역사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과거 냉전기에 서로 치열한 핵 개발 경쟁을 벌일 정도로 냉랭한 사이가 지속됐었다. 그러나 1991년 양국이 핵 경쟁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관계가 급진전됐다.
임기 중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로페스 대사는 “남은 임기에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브라질에 유치하고 싶다”며 “올해 하고 있는 한·브라질 수교 60주년 기념행사 등을 통해 양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국의 경제와 문화를 모두 가까이 잇는 가교가 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정연일/심은지 기자 neil@hankyung.com
■ 공기업 민영화·세제 개편…브라질, 강도높은 개혁 중브라질은 올 들어 정치·세제·연금 등 각종 부문에서 강도 높은 개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 체질 개선 정책의 일환이다. 100개가 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 해체하고, 현재 34%인 법인세를 15%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복잡한 세제 개편을 통한 세수 증대 방침도 밝혔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고 연금 최소 납부 기간을 늘리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오는 22일 예정된 상원에서의 2차 표결에서도 통과가 점쳐진다.
■ 루이스 엔히키 소브레이라 로페스 주한 브라질 대사 약력△ 195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 1978년 브라질 브라질리아대 경제학과 졸업
△ 1980년 브라질 외무부 근무 시작
△ 2005~2007년 브라질 국립외교연수원 부원장 및 교육총괄조정관
△ 2007~2013년 유럽연합(EU) 브라질대표부 공사참사관
△ 2014~2016년 브라질 외무부차관 특별보좌관
△ 2016~2018년 10월 브라질 외무부 아프리카국장
△ 2018년 10월~ 주한국 브라질대사관 대사■ 로페스 대사가 즐기는 브라질 음식 세 가지슈하스코 각종 고기·채소구이
모케카 해산물 스튜
버버 브라질式 덮밥
루이스 엔히키 소브레이라 로페스 주한 브라질대사에게 즐겨 먹는 브라질 음식 세 가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슈하스코, 모케카, 버버를 꼽았다.
‘슈하스코(churrasco·오른쪽)’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브라질 음식이다. 커다란 고깃덩어리와 과일, 야채가 일렬로 꽂혀 나온다. 어른 주먹 서너 배 크기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익혀진 부분만 칼로 쓱쓱 잘라 돌려가면서 먹는다. 기다란 쇠꼬치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해산물뿐만 아니라 파인애플, 양파, 토마토, 바나나 등 채소와 과일을 함께 꿰어 굽는다. 슈하스코를 파는 식당을 ‘슈하스카리아’라고 부른다. 슈하스코는 여러 명이 함께 먹는 잔치음식이다.
‘모케카(moqueca)’는 새우, 오징어 등을 넣어 만든 해산물 스튜다. 어떤 해산물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새우 모케카, 오징어 모케카 등으로 종류가 나뉜다.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코코넛 우유와 토마토 소스를 기초로 요리한다. 진흙으로 만든 브라질 전통 자기에 끓여내며 기호에 맞게 고추를 첨가해 매운맛을 내기도 한다.
‘버버(bobo·왼쪽)’는 브라질 북동부 지방인 바이아주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구황식물의 한 종류인 카사바 가루를 소스와 같은 형태로 만들고 여기에 각종 채소와 새우 등을 더해 끓여낸다. 모케카와 달리 덮밥 형식으로 쌀밥과 함께 먹는다. 버버는 몇 년 전 TV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브라질 대표 전통음식으로 소개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정연일/심은지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