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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칼럼] 경제학원론과 싸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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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퇴 후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부쩍 늘었다.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를 찾더니 어제는 경제장관들을 불러모았다. 경제상황이 엄혹한 시기에 대통령이 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고 낯설고 불편하다는 얘기가 많다.

최근 대통령의 “우리 삼성” “미래차 1등” 같은 발언과, 지난 2년 반 동안 보여준 반(反)기업·반시장 정책기조 중 어느 쪽이 진심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런 인지부조화는 정부가 스스로 연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기대를 갖게 한 ‘혁신성장’은 획일적 규제에 맥을 못 추고, ‘북한 올인’ 외교는 글로벌 무역분쟁에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현장의 비명은 귀 막은 채 친(親)노동조합으로 일관하지 않았나. 국가경제를 폭넓게 조망할 안목도, 정책들 간의 정합성도, 장단기 효과에 대한 성찰도 없이 두더지잡기식 경제 운용을 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경제학 원론과 싸우려 든다”(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비판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경제학이 240여 년간 발견하고 축적한 세상의 진실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고, 사람은 경제적 유인(인센티브)에 반응하며, 정부가 커질수록 민간은 위축된다는 것이다. 수요·공급법칙, 대리인 문제, 래퍼곡선, 거래비용, 정보비대칭 등의 경제원리도 현실을 잘 설명해준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다룬다”(맨큐의 경제학)는 관점에서 누구나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정부의 정책을 주무르는 ‘핵인싸(핵심 인사이더)’들은 경제학의 진실을 모른 체하거나 아예 잘 모르는 것 같다. 사회주의 경제이론에 탐닉하느라 제대로 공부를 안 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의 획일적 규제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에 대한 숙고 없이 밀어붙였고, 세계가 규제 혁파와 감세 경쟁으로 민간 활력을 키우는데 홀로 거꾸로 갔다.

기업들의 탈(脫)한국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도 별로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민간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5분기째 마이너스여도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정신승리’ 화법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과거 정권을 ‘토건족’이라고 비난하더니 어제 회의서 논의된 대책이 건설투자 확대인 점도 아이러니다.

누가 대통령에게 오도된 경제관을 주입하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청와대의 경제 책임자인 정책실장인가, 이 와중에도 “경제가 내년 초 반등한다”는 경제수석인가. 진짜 실세라는 ‘586’ 참모들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경제가 나빠져야 장기 집권에 유리하다고 여긴 미국 민주당 소속 시장들처럼 ‘컬리 효과’를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것인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3.3%→3.0%) 낮추면서 한국은 0.6%포인트(2.6%→2.0%)나 내렸다. 국제금융가에선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가장 충격이 큰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숙명이다. 대외여건 악화와 국내 정책 부작용이 맞물려 ‘1%대 성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경제난을 걱정하면 정치적 공세로 받아들이는 정치중독증까지 심하다. 편안할 때도 위태로운 상황을 생각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는커녕, 위태로운데도 그런 줄 모른다. 한참 단추를 잘못 끼운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챙기고 정부가 성과를 내겠다고 하니 기업들은 더럭 겁부터 난다. 오죽하면 “정부가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할까 싶다.

국가 리더십은 ‘1+1=2’를 넘어 3, 4, 5가 되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동시에 2도 못 되게 할 수도 있다. 보수야당이 혁신하지 않으면 집권이 불가능한데서 끝나지만, 장기집권을 꿈꾸는 집권여당이 경제 운용의 대오각성과 혁신이 없다면 그것은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다. 제발 경제학 원론과 싸우려 들지 맙시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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