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많은 부문과 마찬가지로 미술시장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미술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에 직면해 있지만, 문화사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의식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가 개인소장가들이 미술품을 팔아서 얻는 소득을 ‘기타소득’이 아니라 ‘사업소득’으로 분류해 과세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술계는 사실상 패닉에 빠졌다.
한국의 연간 미술품 거래액은 중견기업 한 곳의 매출에 불과한 4000억~5000억원대다. 미술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로 거둬들이는 세금은 고작 연간 20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 도입 영향 탓에 2007년 604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한국 미술시장이 2013년엔 3249억원 규모로 추락했다. 미술품 소장가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경매회사에 작품 매각을 의뢰하는 행위의 법적 성격은 위탁매매다. 여기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을 사업소득으로 간주해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미술시장을 궤멸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보자. 근로·사업·이자 소득 등 연간 소득에서 비용을 제외한 종합소득액이 3억원인 사람이 10억원의 그림을 판매한 경우, 현재는 원가 인정비율 80%를 제외한 2억원에 대해 양도소득세율 20%를 적용받아 4400만원(4000만원에 지방세 10% 추가)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미술품 판매를 사업소득으로 분류하면 기존 소득 3억원에 10억원의 미술품을 판매한 차익 2억원이 종합소득에 더해지고, 이 구간은 40%의 세율이 적용돼 8000만원의 세금을 내게 된다. 최악의 경우 10억원에 판매한 미술품의 원가 인정을 아예 못 받게 되면, 10억원에 대한 과세표준구간이 적용돼 약 5억5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공평과세’에 대한 정부 논리도 중요하지만, 선진국보다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 미술시장에 ‘세정(稅政)의 칼날’을 들이댄다고 해서 경제적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로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됐음에도 정부가 또 과세 강화를 추진하는 것은 미술 애호가들을 시장에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림을 사고파는 사람이 없으면 작가가 생존할 수 없고 미술 대학, 미술 관련 산업도 설 자리를 잃는다. 개인소장가 없이 미술시장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처럼 미술시장이 침체된 나라도 없다. 개인소장가들을 홀대하는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장가를 마치 죄인 취급하는 정부의 부정적인 시각과 대우는 미술시장과 관련 산업, 학문을 고사시키고 있다. 개인소장가들은 미술품 구매를 기피하고 기업들은 미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작가들은 최저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고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허덕이고 있다.
정부는 미술품 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얻는 효과를 생각하기에 앞서 그로 인해 잃어버릴 수 있는 한국 미술의 미래도 생각해봐야 한다. 당장은 말이 없는 듯 보이지만 지금 미술계의 민심은 매우 흉흉하다. 문화를 잃으면 나라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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