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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자동차 노조 다섯 곳의 5색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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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운동에서 전태일과 자동차산업 노조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태일은 노동권 운동을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자동차 노조는 노동계의 조직화와 세력화를 가속화했다. ‘자동차 노조를 알면 대한민국 노동운동이 보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투쟁적·행동중심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주력이 금속노조인데 금속노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자동차 노조다.

차기 지도부로 협상 미뤄

현대·기아, 한국GM, 쌍용, 르노삼성 등 5개 완성차 노조는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곳은 2009년 파업 이후 민주노총을 탈퇴한 쌍용차노조다. 지난달 사원 복지 축소와 순환 휴직 등을 골자로 한 회사 측의 비상경영안을 수용했다. 8월엔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끝내 연속 무분규 기록을 10년으로 갈아치웠다. 10분기 연속 적자인 회사 경영난을 모르쇠할 수 없었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현대차도 지난달 8년 만에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기아차는 지부장 선거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한국GM노조는 파업과 협상을 거듭하다 차기 지도부로 협상을 넘겼다. 기아차도 곧 구성될 노조 지도부가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르노삼성노조는 60여 차례 부분 파업을 벌였으나 여전히 사측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협상, 결렬 선언, 파업, 생산시설 점거, 상처뿐인 타결’이라는 기존의 자동차 노조 협상 과정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5사 5색’이다.

자동차산업은 불확실성에 처해 있다. 수소차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변화는 불가피하다. 현대차 노사가 구성한 외부자문위원회가 ‘향후 최소 20%에서 최대 40%의 인력 감축 불가피’라는 결론을 내린 것도 궤를 같이한다. 자동차는 2만~3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다. 후방산업 연관 효과는 천문학적이다.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여부는 자동차 5사의 명운은 물론 수십만, 수백만 개 일자리의 존망도 가르게 된다.

자동차 노조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진골’인 만큼 투쟁력은 그 어느 곳보다 강하다. 다소 기형적인 자동차산업 노사 관계도 노조에 큰 힘을 부여하는 요소다. 자동차 노조는 산별노조다. 그래서 현대차노조는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다. 그럼에도 파업권과 교섭권은 개별 지부에 있다. 사측은 금속노조, 지부, 지부 산하의 지회와 3중 교섭을 해야 한다. 노조의 협상력은 당연히 커지게 마련이다. 베이비부머 퇴직과 고령화라는 한국적 특수여건까지 대응해야 하는 사측으로서는 비효율이 차고 넘친다.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대비하지 않으면 자동차산업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언감생심인 구조다. 지난 15일 현대차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조도 미래차 시대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로 해석된다.

또다른 '촛불 청구서' 되나

자동차 노조의 ‘5사 5색’은 다양화 측면에서 바람직할 수도 있다. 노사 화합과 생산효율로 경쟁력을 키우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현실은 거리가 있다. 조합원 투표를 통한 지도부 구성 과정에서 선명성 경쟁이 여지없이 나타났던 전철에 비춰 다양화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이끄는 길일지 모른다. 자기 지도부가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사측과 재협상에 나선다는 점도 변수다. 광화문에 나부낀 노동계 깃발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비준이라는 청구서로 지금도 날아오고 있다. ‘5색 행보’가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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