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등 야당, “정부가 은행 지점 폐쇄 막아야”
정부, “기업 전략에 개입하는 건 부적절”
전 세계 금융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영국에서 은행 지점 폐쇄를 놓고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과 정부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대형은행들이 런던을 제외한 지방을 중심으로 지점을 대거 폐쇄하자 정부가 개입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민간 은행의 경영 전략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제1야당인 노동당은 주요 시중은행장들과 조만간 긴급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시중은행들의 잇단 지점 폐쇄를 막기 위해서다. 야당은 “은행들의 지점 폐쇄가 노인들과 지방 고객들의 은행 접근성을 빼앗을 수 있다”며 “은행들이 이런 전략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최근 소비자매체인 ‘Which?’가 조사한 통계를 인용해 2015년 1월 9803개였던 은행 지점이 지난 8월 6549개로 3254곳이 줄었다고 보도했다. 4년 7개월 만에 33.2% 감소했다. 이 기간 동안 은행들은 3303곳의 지점을 폐쇄했고, 49곳의 지점을 늘리는 데 그쳤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바클레이스, HSBC, 로이드 등 자산 규모 기준으로 영국 ‘빅4’ 대형은행들이 지점 폐쇄를 주도했다.
BBC에 따르면 RBS는 이 기간 동안 영국 전역에 있는 전체 지점의 4분의 3에 달하는 412곳을 폐쇄했다. RBS의 자회사인 낫웨스트은행도 같은 기간 639곳의 지점을 폐쇄했다. 바클레이스는 이 기간 동안 481개의 지점이 문을 닫았다. HSBC와 로이드는 같은 기간 각각 442곳과 402곳의 지점을 폐쇄했다.
지역별로 보면 2015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웨일즈에 있는 은행 지점의 43%가 폐쇄됐다. 스코틀랜드는 같은 기간 38% 줄었다. 현재 운영되는 은행 지점 중 4.6%인 298곳이 주 4일 이하만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FT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서덜랜드 지역에선 2005년 이후 8개의 은행 지점이 폐쇄되면서 단 한 곳의 지점만 남았다. 마을 외곽의 일부 주민들은 이 지점을 찾기 위해 왕복 150마일(약 241㎞)의 거리를 세 시간에 걸쳐 이동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지점 폐쇄로 스코틀랜드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의 소기업들이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 지점이 멀다보니 현금을 사무실에 쌓아놓는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자민당의 제이미 스톤 하원의원은 “은행 지점이 없어지면서 범죄자들이 현금을 쌓아놓는 지역 소기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도 은행들의 잇단 지점 폐쇄를 우려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은행들의 경영 전략에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 영국 정부의 공식 방침이다. 영국 재무부는 최근 하원에 보낸 서신을 통해 “은행 지점이 폐쇄될 때 지역사회에서 느끼는 불만에 공감할 수 있다”면서도 “지점 개설과 폐쇄 결정은 각 은행 경영진이 자율적으로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무부는 이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는 고객 이익과 시장 경쟁 등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앞장서 기업의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은행들의 지점 폐쇄 결정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영국 은행연합회와 함께 고객들이 지역 우체국에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지 언론들은 정부가 은행들의 잇단 지점 폐쇄에 대해 마땅한 ‘묘책’(silver bullet)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전했다. 야당은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스톤 의원은 “정부가 스코틀랜드 일부 지역에서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무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그동안의 통상적인 금융관행이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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