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주미대사 내정자(사진)가 9일 미국 정부로부터 동의를 뜻하는 ‘아그레망’을 받았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지 62일 만이다. 그간 외교가에서는 이 내정자의 아그레망이 지연되면서 부임이 늦어지자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외교부는 “9일자로 주미대사 내정자에 대한 주재국 아그레망을 공식 접수했다”며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신임 대사가 조속히 부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인 이 내정자가 정식 발령이 나 민주당을 탈당하면 비례대표 후순위인 정은혜 전 민주당 부대변인이 의원직을 승계한다. 이 내정자에 대한 발령과 민주당 탈당 절차는 이르면 이번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 내정자의 아그레망이 늦어진 이유가 행정 절차상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역대 주미대사들이 아그레망을 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적으로 30일 안팎이었다. 최근 10년 사이 아그레망 대기가 가장 길었던 전임자는 안호영 주미대사로 50일이었다. 현재 주미대사를 맡고 있는 조윤제 대사는 43일 만에 나왔다. 한·미 관계가 좋지 않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아그레망을 받는 데 가장 오래 걸린 경우는 36일(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었다.
아그레망이 늦어진 데 대해 외교가에선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미국 정치권에 도널드 트럼프 탄핵 정국이 조성되면서 아그레망 이슈가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환멸을 느낀 적잖은 공무원이 미국 국무부에서 대거 빠져나가면서 행정 공백이 생긴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박 교수는 “한·미 동맹이 튼튼했다면 다른 어떤 일을 제쳐두고라도 아그레망을 일찍 내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내정자가 몇 달 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표리부동하다”고 비판한 것이 미국 측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외교 무대에선 해당 국가를 비판하거나 위해를 가한 전례가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기피 인물이라는 뜻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목돼 아그레망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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