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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만추에 만나는 연민의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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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논하는 ‘조커’...호아킨 피닉스 연기 볼만하네
|파괴 일삼는 조커? 연민의 王이라 불러다오

[김영재 기자] 2일 개봉한 영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는 ‘공감’에 대한 작품이다. 인간은 대상에 공감하거나 그 공감을 거두며 살아간다. 이와 관련 ‘조커’는 “우리가 거리에서 지나쳐갔거나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인 무명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즉 애초에 그를 향한 타인의 공감이 결여된 이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우리네와 다를 것 없는 이가 특정 서사와의 결합 속에 존재 이유를 갖는 광경은 소위 ‘작은 영화’가 선호하는 상투적 전개다. 하지만 코믹스 기반 영화가 선과 악을 나누는 이분법 대신 인간의 고뇌에만 집중하는 이런 장르의 전복은 결국 이 작품이 제7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제일 명징한 것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호연이다. 몇 달 전 국내 개봉한 영화 ‘돈 워리’에서는 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낸 트라우마에 사고로 인한 전신 마비까지 갖은 고난에도 불구, 결국 그 자신을 인정하고 카투니스트로 성공한 실존 인물 존 캘러핸을 연기한 그가, 이번에는 도무지 그 혼돈의 근원을 알 수 없는 조커가 될 광대 아서를 연기했다.

우선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고 약 23kg를 감량한 그의 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흡사한 그 외모는 광대 분장이 없더라도 호아킨과 조커를 등호(=)로 연결시킨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듯한 아서가 세상에 조커(Joker)―트럼프 카드의 조커가 아니라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조커다.―로 등장하기 전, 그가 몸으로 그려 내는 유려한 곡선은 후의 폭발적 폭력과 대비돼 더 또렷이 기억될 우아한 날갯짓이다. 하지만 열연(熱演)이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제목이 ‘조커’인 만큼 아서 외 다른 등장인물은 오직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조연으로 스쳐지나가고 만다.

호아킨이 내뿜는 열기에 맞서는 이는 아서의 우상이자 유명 토크쇼 진행자인 머레이 프랭클린 역의 배우 로버트 드 니로뿐이다. 특히 ‘조커’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두 영화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에 상당수를 빚진 작품으로, 두 작품에서 로버트는 각각 의도치 않게 폭력으로 세상의 관심을 이끌어 낸 베트남 전쟁 출신 퇴역 군인과 사람을 납치하면서까지 “평생 바보로 살기보다는 하룻밤이라도 왕이 되고 싶”어 한 만년 코미디언 지망생을 연기했다. 약 30년 전에 그가 걸어 온 길이 눈앞에서 재해석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호아킨의 시종일관 뜨거운 연기에 자칫 녹아 버릴 뻔한 본작은 두 연기파의 티키타카에 의해 간신히 제자리를 찾고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조커’는 배우에게는 상을, 반면 감독에게는 물음표를 건네고 싶은 작품이다. 감독의 전작, 영화 ‘행오버’ 시리즈에 기반한 걱정은 기우였다고 평할 만큼 완성도는 준수하다. 아동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양극화가 부른 계층 갈등·정상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곳곳에 포진시켰음에도 번잡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기존 장르의 전복과 두 배우의 호연이 대단할 뿐 익숙한 서사 및 후반부는 과연 이 작품이 그랑프리를 받을 만한 작품이냐에 부정을 답하게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연출 면에서는 참신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 ‘배트맨’에서 조커는 사고 후 비정규 외과 수술을 통해 ‘웃는 남자’가 된 이로 그 기원이 등장한다. 사실 2019년의 ‘조커’는 영화나 코믹스에 등장한 적 없는 독창적 서사가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명문화된 공식 탄생기가 등장한 적 없다는 사실은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주었을 터. ‘조커가 광대라면 어떨까?’도 그 상상력에 기초한 물음이다.

하지만 세상에 웃음을 주고 싶을 뿐인 광대 “해피”가 결국 공감과 존중이 결여된 도시 고담에 의해 파괴의 상징이 되는 이 친절한 서사는, 아서가 카메라 앞에서 그가 왜 세상을 등지게 됐는지 한탄하는 신과 맞물려, ‘혼돈’과 동의어로 존재한 기존의 조커를 일순간 퇴색시키고 만다. 그 사연을 모르기에 더 무섭고 파괴적인 남자가 ‘당신도 사회가 낳은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위로와 안도를 받는 순간 조커는 해체되고 그 자리에는 입가를 빨갛게 물들인 아서 플렉밖에 남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혹시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다 ‘한 발자국만 내밀면 다 끝날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조커’는 위험한 영화다. ‘또 한 번의 총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작’이라는 여러 해외 매체의 평대로 이 작품은 어떤 이에게는 폭력과 파괴에 매료될 수 있는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조커는 우리가 아는 그 조커가 아님은 분명하다. ‘파괴의 왕’이 ‘연민의 왕’이 되어 돌아왔다. 123분. 15세 관람가.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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