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방 얻어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만큼 유명한 명언이다. 어떤 정부든 출범 초 거창한 장밋빛 청사진을 내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설계주의적 계획 자체가 문제임이 드러난다. 꼬이고, 막히고, 얻어터진 뒤에야 방향을 튼다.
그런 선례에 비춰볼 때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 집착은 이례적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오류와 실패가 확연해도, 당·정·청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권에 우호적인 학자들조차 더 이상 ‘쉴드 치기(감싸기)’를 꺼리는 데도 요지부동이다. ‘소주성 고수’가 ‘조국(법무장관) 수호’와 동급인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공약대로 밀어붙인 곳마다 파탄 나고 비명과 절규가 가득하다. 주력 기업들의 극심한 실적 악화, 10개월째 수출 감소, 일본식 디플레이션 우려 등 거시경제 불안에다 지역경제 붕괴, 자영업 초토화, 한창 일할 40대의 일자리 감소 등 미시적 충격이 마디마디 겹친 복합골절 상태다. 조국 사태에 가려 있을 뿐, 경제체력이 바닥나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린다.
내용물이 부실할수록 포장이 요란해지는 법이다. 요즘 경제실패를 가리려는 통계 화장, 논점 흐리기가 부쩍 늘어난 느낌을 준다. 조선업 수주가 넉달째 세계 1위라는 정부 발표부터 그렇다. 조선업계의 속내를 들어보면 목표치 대비 3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잘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강한 벌크선 발주가 줄어 떠밀려 올라갔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한껏 고무된 지난 8월의 ‘고용 서프라이즈’(45만 명 증가)도, 실상은 비교시점인 작년 8월 고작 2500명 늘어난 데 따른 기저효과에 가깝다. 국회에서 풀타임(주 36시간) 근로자 급감, ‘세금 알바’ 급증을 질타하자, 총리는 “노인이 늘어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는 동문서답으로 어물쩍 넘겼다. 논점 흐리기의 전형이다.
‘정치과잉 정부’답게 경제도 철저히 ‘정치 프리즘’에 넣고 본다. 문제가 생길 때 정치판의 단골수법인 ‘허수아비 때리기’가 동원된다. 서울 강남 집값 트라우마에 대해 실체도 모호한 ‘투기’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때리는 배경이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인데 과연 투기가 있기나 한 걸까. 있다면 그것은 공급부족, 유동성 과잉 속에 분양가 상한제가 자극한 새집 수요일 것이다. 모두가 아는 걸 정부만 모른 체한다.
경제위기를 거론하면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운 지도 꽤 됐다. 정부는 나라밖 악재를 탓하지만, 그 전부터 무너져 내린 사실은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남들 다 오를 때 홀로 떨어지고, 남들 내릴 때는 더 크게 떨어지는 증시 소외주가 돼 버렸다.
그런데도 왜 헛된 공약에 집착할까. 무능하다 못해 꽉 막힌 이유가 뭘까.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기나 한가.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경제팀과 정책을 일신할 의사가 전혀 안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어려울 때 이헌재, 변양균 등 경험 많고 노련한 관료를 기용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게다가 정부를 둘러싼 지지집단에서는 ‘통각상실증(analgesia)’까지 감지된다. 아파도 통증을 못 느끼니,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자해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갈라파고스 규제를 양산하고, 노조가 자사제품 불매운동까지 거론하는 기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국민은 외환위기, 금융위기를 거치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서로 무관한 듯한 징후들이 나중에 도미노처럼 엮여 큰 사고가 터지는 ‘핀볼효과’를 몸으로 기억한다. 내달이면 5년 임기 반환점이다. 진짜 위기는 리더들의 위기의식이 결여됐을 때 온다. 불편한 진실을 더 이상 감추려 해선 안 되고, 감출 수도 없다. 경제가 망가져도 선거법만 고치면 장기집권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면 큰 착각이다. ‘어떤 정부로 기억되고 싶은가’, 국민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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