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오는 5일 비핵화 실무협상을 다시 연다. 지난 6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동’ 당시의 협상 재개 약속 후 98일 만이다. 멈춰 있던 한반도 정세의 시계 초침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노이 노딜’ 후 첫 실무협상
미·북 실무협상의 핵심 책임자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일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5일 실무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최선희는 “나는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조·미 관계의 긍정적 발전이 가속되기를 기대한다”며 “우리 측 대표들은 조·미 실무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실무협상은 지난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 후 8개월 만이다. 미·북은 그동안 비핵화 방식, 대북 제재 등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미·북 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실무협상 미국 측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대북 적대 정책 극복 의지를 밝혔다. 북한은 지난달 9일 최선희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께 협상 의향’을 밝혔다. 실무협상의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와 북한의 대미(對美) 외교 원로인 김계관 외무성 고문도 잇따라 담화를 내며 협상 의지와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나타냈다.
‘새로운 계산법’ 공방 치열할 듯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 실무협상이 어디에서 열릴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회담 장소는 유럽 또는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이 유력시된다. 평양과 뉴욕은 각각 양측의 ‘본진’이란 점에서 고위급 회담 단계에나 가야 가능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비건 대표와 김명길이 이번 실무협상에서 처음 마주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희망하는 ‘새로운 계산법’에 대한 양측의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북 초강경 매파였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하며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이란 기조에서 유연해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 구체적 방법론까지 요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일단 예비접촉을 통해 양측이 원하는 내용을 전부 꺼내고 이튿날 실무협상에서 조정에 들어갈 것 같다”며 “아직 양측의 의견차가 크기 때문에 실무협상이 하루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북 실무협상 재개가 확정됨에 따라 당초 예상됐던 김정은의 5차 방중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졌다. 김정은은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 건국절 축전을 보냈다. 북·중 수교 70주년인 오는 6일을 전후해 방중길에 오를지 여전히 주목되지만, 현재로선 이 축전으로 대신했다는 관측이 많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지금으로선 북한과 중국이 서로 얻을 게 없다”며 “북한은 실무협상과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능한 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고, 중국은 미국과 무역분쟁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靑 “평화 구축 실질 진전 기대”
청와대는 미·북의 실무협상 재개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해 조기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반응은 3차 미·북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미국과 북한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실무협상을 열어야 한다고 촉구해온 입장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이었던 지난달 23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만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미아/박재원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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