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게 진행되는 듯했던 며칠 전의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가 돌연 화제에 올랐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연단에 올라 기성세대에 맹공격을 퍼부어서다. 올해 16세 고교생인 툰베리는 “(기후변화 탓에 인류가) 대멸종을 앞두고 있는데도 각국 정상들이 경제성장이라는 동화(童話)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며 “미래세대는 (행동하지 않는) 당신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툰베리의 발언은 기후변화 원인과 영향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을 뜨겁게 달궜고 갖가지 화제도 양산했다. “‘지구온난화 비즈니스’는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인과 좌파들이 이끄는 기후 히스테리운동”이라는 과학계 비판이 쏟아졌다. 마이클 놀스 폭스뉴스 패널은 툰베리의 정신질환 병력(病歷)을 언급했다가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의 진실’ 규명을 차치하더라도 10대 소녀 툰베리의 기성세대 비판은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정책 결정권에서 소외돼 있지만 미래를 짊어져야 할 세대의 목소리라는 점에서다. 각 세대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환경, 에너지, 문화재 등의 자산을 보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유엔도 1997년 제2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을 통해 이런 ‘세대 간 책무’를 규정했다.
‘세대 간 책무’는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강조한 ‘세대 간 정의’와 일맥상통한다. 롤스는 “각 세대는 당대(當代)에 적절한 양의 자산을 축적해 후속 세대에 넘겨 줄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세대 간 정의 실현’은 난제 중의 난제다. 희소한 자원, 대중에 휘둘리기 쉬운 정치권, 세대 간 이해관계 등이 걸림돌이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 중인 한국에선 일자리, 국민연금, 건강보험, 복지정책 등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과 청년실업률 해소책 없는 ‘정년 연장’은 ‘세대 간 전쟁’을 부추길 조짐마저 보인다. 일부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 위주로 짜인 정책을 ‘세대 간 노략질’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고통분담 없이 국부(國富)를 현 세대 복지와 편의를 위해 낭비한다면 미래 세대의 반발과 반격을 부를 것”(2016년 독일 지속가능개발위원회 보고서)이란 경고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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