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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美경제 성장하면서 '파운드'에서 '달러'의 시대로…돈으로 보면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아닌 '관세해방'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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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항해 시대로부터 350년 후, 신대륙에 새로운 경제 중심지를 구축한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1776년 7월 4일 건국한 이래, 중앙 정부를 강화해 ‘보통 국가’를 만들려는 북부와 주의 자치권을 유지하려는 서부, 영국의 방직업에 의존하는 면화 플랜테이션 농장주가 중심이 된 남부. 이 3자의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부 주들이 아메리카 남부 연합[(또는 남부 맹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해 미합중국에서 탈퇴함으로써 1861년 남북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남북 전쟁의 진상과 링컨의 죽음

미국이 공업 국가로 이행하는 가운데, 시장을 지배하며 부국강병·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기업인 중심의 북부와 사유재산과 가족을 지키는 게 우선인 남부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교과서 등을 보면 1861년에 발발한 남북 전쟁을 ‘노예 해방 전쟁’으로 기술한 책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호관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합중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남부의 11개 주가 독립하려 한 전쟁이었다.

남부는 흑인 노예를 이용한 플랜테이션으로 면화를 생산함으로써 영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이익이 발생하는 자유무역을 원했다. 그러나 북부는 남부가 면화 수출로 벌어들이는 많은 자금을 재원으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자, 무력으로 남부의 독립을 저지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양쪽 군을 다 합쳐 약 62만 명의 사망자를 낸 남북 전쟁의 실태다.

한편 북부 출신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재무부에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미합중국 지폐를 발행하게 했다. 이 지폐는 녹색 잉크로 인쇄되었으므로 보통 ‘그린백(greenback)’이라 불렸다.

링컨은 직접 지폐를 발행함으로써 전쟁 비용 부담을 줄이려 한 의도였으나, 정부가 은행에 이자를 내고 비용을 조달하는 시스템 덕에 이익을 독점해왔던 크고 작은 민간 은행들은 이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전쟁이 끝나고 1865년에 링컨은 결국 암살되는데, 민간 은행들의 반감을 산 것도 한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그 후 재무부가 그린백을 회수함으로써 미국의 달러 발행권은 다시 민간에 돌아간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가 된 이유

흔히 ‘19세기는 영국의 시대, 20세기는 미국의 시대’라고 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세계 공업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금의 4분의 3을 끌어모았다. 이로써 미국의 1강 체제가 탄생한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에는 미국 뉴햄프셔주의 휴양지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 45개국의 재무·금융 담당자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를 통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 1온스를 35달러와 태환하겠다고 선언한 달러를 세계 통화로 하는 ‘금·달러본위제’가 완성되면서, 각국의 통화는 달러와의 고정 환율로 그 가치를 보증받게 되었다.

“돈에 가치를 부여하는 금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으니, 달러가 당연히 기축통화가 되어야 한다.”

미국은 이처럼 주장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돈의 질서와 시스템을 완성했다. 각국의 통화는 달러와 교환되어야만 비로소 금과 교환이 가능해지고, 통화로서 인정된다는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성립된 것이다. 각국은 통화를 금과 교환할 수 있도록 외화 준비를 달러 혹은 미국 국채로 마련해야 했고, 미국은 이자가 붙는 미국 국채를 보급하려 했다. 연방준비제도하에 미국에서 시행되던 달러와 미국 국채의 관계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환율은 왜 매일 바뀌게 되었을까?

1960년대 이후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달러 발행액을 늘리나,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달러의 신용도는 계속 떨어졌다. 이로 인해 달러와 금의 교환량이 늘어나자 금 보유량이 줄어들었고, 이어서 투기성을 띤 달러 매도 움직임이 급격히 늘었다. 결국 1971년 8월, 격렬한 달러 매도 압력에 한계를 느낀 닉슨 대통령은 긴급 TV 기자회견을 열고,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닉슨 쇼크(달러 쇼크)’라 불리는 세계사 수준의 화폐 대변동이다.

미국 정부는 애초 주요 10개국의 협력을 얻어 어떻게든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달러 약세가 멈추지 않자 결국 1973년에 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 그렇게 브레턴우즈 체제는 불과 25년여 만에 공중 분해되었다. 동시에 금융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무역 결제뿐 아니라 국경을 넘은 투자·결제 등에서 환율 거래가 확대된다. 이로써 환율은 날마다 변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격렬하게 변동하게 되었다.

글 싣는 순서

①화폐의 탄생과 제국의 역사
②대항해 시대와 돈의 흐름
③동전 시대에서 지폐 시대로
④달러, 세계 돈 기준이 되다
⑤통화가 움직이는 세상


김은찬 한경BP 에디터 k_eun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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