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1986~1991년 발생)의 유력 용의자를 첫 사건 발생 33년 만에 경찰이 찾아냈다. 최근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은 DNA 분석 결과 50대 남성 A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2006년 끝나 처벌은 어려울 전망이다.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일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18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50대 남성 A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A씨의 나이는 20대로, 경찰이 추정한 용의자의 나이대와 일치한다. A씨는 화성사건과 별개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7월 중순께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고, 피해 여성의 속옷 등 증거물 두 건에서 나온 DNA가 A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남은 증거물도 감정을 의뢰하고, 수사기록 분석 및 관련자 재조사 등을 통해 A씨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관련성을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방청을 중심으로 수사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에 따라 각 지방청 미제수사팀은 관할 주요 미제사건을 수사해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도 관련 기록 검토 및 증거물 감정 의뢰 등 필요한 수사 절차를 밟던 중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DNA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십수 년이 지난 뒤 재감정을 의뢰한 증거물에서도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은 어려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 화성시에서 10차례에 걸쳐 13~71세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숨진 사건이다. 범인은 밤중에 인적이 드문 논밭이나 오솔길에 숨어 귀가하는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범행 도구로 흉기가 아니라 피해자의 옷가지 등을 이용했고, 피해자가 잇따라 발생해 전국적으로 공포가 퍼졌다.
이 사건에 동원된 경찰 연인원은 200여만 명으로 단일 사건 중 최다였으나 당시 수사 방식의 한계로 범인 검거에 실패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 군 유괴사건’과 함께 국내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2003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A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돼도 처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마지막인 10번째 사건이 1991년 발생해 공소시효가 2006년 만료됐기 때문이다. 2007년 이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일명 ‘태완이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5년 8월 시행되며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으나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에 대해서는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후에도 다양한 제보의 관련 여부를 확인하는 등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노유정/수원=윤상연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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