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총력대응을 해도 헤쳐나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 된 것 같습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암울한 경제 상황에 대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정치에 파묻혀 ‘경제 살리기’ 논의 자체가 실종된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 관련 법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국회와 ‘경제위기 불감증’에 빠진 정부를 직접 겨냥했다. 18일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2019년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다.
박 회장은 이날 개회사와 기자간담회 발언을 통해 “세계 경기가 하락 기조로 돌아섰고, 기업의 비용 상승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대내외 악재가 종합세트처럼 다가오는데도 경제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가 이렇게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 되면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국민의 살림살이는 어떻게 될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걱정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경제보복 등 대외 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위기 극복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박 회장은 기업의 손발을 묶고 있는 낡은 규제부터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글로벌 환경은 갈수록 각축전이 돼 가는데, 우리 기업들은 구시대적 법과 제도로 인해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풀어 성공사례를 만들어 보려고 국회와 정부를 셀 수 없이 찾아갔지만, 그 노력 대부분은 무위로 돌아갔다”고 털어놨다.
박 회장은 정쟁에 몰두하는 여야 정치권을 향해 “20대 국회 들어 제대로 일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자 성장과 고용, 분배, 재정건전성 등 부문별로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지방상의 회장들도 쓴소리를 했다. 한철수 경남 창원상의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기업들이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하 대구상의 회장은 “기업하는 사람이 죄인 취급받는 나라에서 경영을 하느니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기업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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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규제로 옴짝달싹 못하는데…20대 국회 제대로 열린 적 있었나"
박용만 상의 회장, 정치권·정부에 또 쓴소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마무리 발언은 “부산까지 와서 너무 어두운 얘기만 한 것 같은데, 당면한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보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였다.
박 회장은 18일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 앞서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내내 무거운 발언을 쏟아냈다. 특유의 밝은 표정과 농담은 없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박 회장이 작심하고 평소 못 했던 말을 다 털어놨다”고 전했다.
박 회장이 이날 가장 날을 세운 대상은 정치권이었다. 그는 “20대 국회 들어 국회가 제대로 열려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없다”며 “올 들어서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가 경제 관련 법안 처리에 손놓은 지 굉장히 오래됐다”며 “벤처, 신사업과 관련한 중요 법안들이 다수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쟁점 없는 법안이라도 우선 통과시켜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부탁했다.
현 경제 상황을 안이하게 보는 정부를 향해서도 대놓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자 박 회장은 10분 넘게 조목조목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대통령과 대립하자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우려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어 민간부문의 성장 정체와 제조업 및 금융업 일자리 감소, 나빠진 분배,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대통령 발언을 반박했다. 박 회장은 “요즘 경기 하락 리스크(위험)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박 회장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기업 관련 플랫폼 개혁’을 제시했다.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풀어주자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활동이 부진한 것도 폐쇄적 규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며 “제가 만난 벤처기업인들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 없다’고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개혁하자는 주장도 폈다.
박 회장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에 대해 “원만하게 해결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개별 기업 간 분쟁을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과 관련해서는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고 따르는 게 맞다”면서도 “삼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상징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산=도병욱/장창민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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