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구조물 위에 화병 하나가 놓여 있다. 세월의 흔적이 짙은 유리병엔 시든 꽃 한 다발이 담겨 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장면인데,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 작품은 사진가 박미정의 ‘볼드윈 위의 정물’ 연작 가운데 하나다. 볼드윈은 한때 인기 있었던 피아노 브랜드다. 박씨는 오랜 세월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볼드윈 위에 오래된 물건들을 올려놓고 카메라에 담았다. 피아노와 화병과 꽃은 삶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본래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됐다.
사람은 수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살아간다. 소유자의 감정, 추억과 관련이 있는 경우 사물은 생명체 못지않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정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물건을 통해,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보여준 것이다. 사진가 박미정은 낡은 피아노 위의 시들어 버린 정물을 통해 ‘소멸’을 이야기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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