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적 규모의 오르간 연주 경연이 열린다.
롯데문화재단은 한국오르가니스트협회와 함께 내년 9월 ‘제1회 한국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개최한다고 18일 발표했다. 협회 주최로 한국인이 참가하는 콩쿠르는 있었지만 국제 오르간 콩쿠르가 국내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은 1988년부터 무사시노-도쿄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열고 있고, 중국도 2017년 상하이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출범시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국제 오르간 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오자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오르가니스트협회 이사장)는 이날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재정적 지원과 경연 장소가 여의치 않아 국내에서는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며 “조금 늦었지만 이번 콩쿠르가 재능있는 오르가니스트를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오르간 음악을 즐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교회와 성당 음악에서 자주 사용하는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 선율을 표현할 수 있어 ‘악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고전적이고 웅장한 소리로 경건한 분위기를 내지만 설치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클래식 공연장에서 만나보기는 쉽지 않았다.
롯데문화재단은 2016년 롯데콘서트홀을 개관하면서 25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의 파이프 오르간을 제작한 리거(Rieger)사에 파이프 오르간을 주문 제작했다. 2000석 이상 국내 대규모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곳은 롯데콘서트홀이 유일하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투자가 국제 오르간 콩쿠르 창설로까지 이어졌다. 김선광 롯데문화재단 대표는 “지난 7월 오르가니스트 최규미가 영국 세인트 올번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며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통해 한국 클래식과 오르간의 발전을 위한 위상을 드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콩쿠르는 다음달 10일부터 내년 4월까지 이어지는 서류 접수로 시작한다. 내년 9월 본선 1차와 2차 경연을 거쳐 결선 진출자 5명을 선발한다. 9월 25일 결선 무대를 펼치고 다음날 시상 후 갈라 콘서트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콩쿠르 본선 1차는 바로크 레퍼토리에 특화한 고아트 오르간이 설치된 서울 석관동 한예종에서, 2차와 결선은 리거사 오르간을 보유한 롯데콘서트홀에서 치러진다. 결선에서는 50분간 바흐의 한 작품과 현대곡인 콩쿠르 위촉곡을 연주해야 한다.
롯데문화재단은 콩쿠르 창설을 기념해 독일에서 활동하는 박영희 작곡가에게 현대곡을 의뢰해 ‘달빛 아래 별빛 아래’란 제목의 작품을 받았다. 본선 진출자는 내년 6월 작품 악보를 전달받는다. 이 위촉곡 해석을 가장 탁월하게 한 참가자에게는 ‘박영희 특별상’을 별도로 수여한다.
심사위원은 심사위원장인 오 교수를 비롯해 오르가니스트 미셸 부바르(프랑스), 아르비드 가스트(독일), 나오미 마추이(일본), 신동일(한국), 데이비드 티터링턴(영국) 등이 맡는다. 아르비드 가스트 독일 뤼벡국립음대 교수는 “르네상스, 바로크 레퍼토리뿐 아니라 현대곡까지 폭넓은 연주 능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특별한 콩쿠르”라며 “결선에서는 음악가에게 필요한 자질인,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성하는 능력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국제 오르간 콩쿠르엔 1988년 9월 1일 이후 출생한 오르가니스트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1위 수상자에게는 8000달러의 상금과 향후 2년간 롯데콘서트홀 기획공연 출연 기회가 부여된다. 2위와 3위 수상자에겐 각각 5000달러와 3000달러 상금이 주어진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